[인터뷰] “현장이 우선”…로봇 강자 엡손이 AI를 대하는 방식

유조 오카다 엡손 기업커뮤니케이션 수석 인터뷰
일본 iREX에서 만난 엡손…현장에 스며든 AI 기술

▲엡손이 지난해 12월 3~6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개최되는 국제로봇전시회(iREX2025)에 참가했다. 엡손은 제조업뿐 아니라 자동차와 전기차(EV), 생명과학, 식품, 소매 등 전반에 사용되는 로보틱스와 기술,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솔루션 등을 선보였다. (도쿄(일본)=이수진 기자)

글로벌 1위 로봇 기업 ‘세이코 엡손(엡손)’은 인공지능(AI)을 산업의 판을 바꾸는 기술이라기보다, 이미 구축된 로봇과 제조 경쟁력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로봇 자동화 솔루션과 생산 공정에서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향후에도 제품과 솔루션 단위에서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간다는 전략이다. 그간 일본 로봇 산업이 AI 없이도 충분한 품질과 성능 경쟁력을 유지해온 만큼 AI를 ‘지금 당장 반드시 도입해야 할 기술’로 보기보다는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영역부터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지난달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국제로봇전시회(iREX2025)에서 만난 엡손 기업커뮤니케이션 담당 유조 오카다 수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엡손 AI 철학에 대해 “엡손은 이미 로봇 자동화 솔루션과 생산 공정 곳곳에서 AI 기술을 활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제품과 솔루션 단위에서 점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엡손이 그리고 있는 로보틱스의 현재와 미래가 공간적으로 구분돼 펼쳐진다. 중앙의 링 형태 공간에는 비전과 AI를 결합한 차세대 기술 데모가 배치됐고, 이를 둘러싼 외곽에는 자동차·전기차(EV)·라이프사이언스·식품·소매 등 산업별 로봇 솔루션이 단위 공정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다.

로봇 제어와 개발을 지원하는 통합 개발 환경 ‘Epson RC+’ 시연 공간에서는 이미지 인식과 조명 자동 보정, 생성형 AI 기반 개발 지원 기능이 적용된 화면이 반복 재생되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로봇이 물체를 인식하고 옮기는 단순 동작뿐 아니라, 검사·운반·조립·서비스로 이어지는 적용 장면을 실물 데모로 보여주며 엡손이 말하는 로보틱스를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 빅사이트 국제로봇전시회(iREX2025)에서 만난 유조 오카다 엡손 기업커뮤니케이션 수석. (도쿄(일본)=이수진 기자)

유조 수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완성된 하나의 공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자동차, EV, 라이프사이언스, 식품, 소매 등 각 산업에서 필요한 단위 공정을 가상으로 설정해 전시했다”며 “엡손 로봇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엡손이 특히 강조한 것은 비전(Vision) 기술과 AI의 결합이다. 그는 “비전은 사람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술”이라며 “기본적으로는 2D 카메라로 물체를 인식하지만, 로봇이 물체를 집으려면 높이 정보까지 필요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에는 이를 위해 고가의 3D 비전 장비가 필요했지만, 이번에 선보인 솔루션은 2대의 2D 카메라에 AI 기술을 적용해 3D에 가까운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며 “비용 부담을 낮추면서도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솔루션은 이번 iREX2025에서 처음 공개된 참고 출품으로, 아직 상용화 전 단계다.

AI를 대하는 엡손의 태도는 신중하다. 유조 수석은 “이번에 전시한 AI 솔루션이 엡손의 첫 AI 기술은 아니다”라며 “이미 여러 영역에서 AI를 활용하고 있고, 로봇 자동화 솔루션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엡손은 자사 생산 현장에서도 AI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프린터 헤드에 들어가는 칩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불량 검사에 AI를 적용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검사 공수를 기존 대비 약 80% 줄이는 것을 목표로 현재 운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산업계가 AI 도입에 상대적으로 늦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유조 수석은 배경을 짚었다. 그는 “일본은 로봇과 제조 분야에서 AI를 적용하지 않아도 고품질과 성능 경쟁력을 유지해 왔다”며 “AI를 적용하면 생산성이 높아질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당장 반드시 필요한 과제는 아니었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글로벌 시장을 보면 중국을 포함한 해외 기업들이 AI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 변화 속에서 일본 기업들도 제품 개발과 솔루션 제안 단계에서 AI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적용하려는 흐름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엡손이 지난해 12월 3~6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개최되는 국제로봇전시회(iREX2025)에 참가해 ‘AI 비전(PoC)’으로 데모를 보여줬다. 엡손은 고가의 3D 카메라 없이도 두 대의 2D 카메라와 AI 기술을 결합해 입체 인식이 가능한 비전 솔루션을 선보이며, 로봇 자동화 현장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도쿄(일본)=이수진 기자)

엡손 역시 내부 기술만으로 AI를 모두 해결하려는 접근은 아니다. 유조는 “내재화가 어려운 영역에서 외부 기업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면 출자나 투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다”며 “AI 관련해서도 그런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통합 개발 환경 ‘Epson RC+’의 진화가 눈에 띄었다. 그는 “로봇에게 ‘이렇게 움직이고 싶다’고 자연어로 지시하면, 그에 맞는 코드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기능을 개발 중”이라며 “아직 출시 전이지만, 고객이 로봇을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유조 수석은 엡손 로봇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했다. “엡손 로봇은 컴팩트함, 고정밀, 에너지 효율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AI를 통해 당장 모든 것을 바꾼다는 접근이 아니라 생산성과 현장 과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도구로 보고 있습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