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영화 얼굴’ 안성기, 향년 74세로 영면⋯시대의 상처 연기로 껴안아(종합)

가족 다음으로 그와 가까이 지내온 제게 안성기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관객들도 국민들도 한결같이 그를 사랑하나 봅니다.

▲배우 안성기 (연합뉴스)

변화무쌍한 연예계에서 ‘국민 배우’로 불리며 오랜 시간 대중의 신뢰를 받아온 배우 안성기에 대한 후배 박중훈의 평가다. 박중훈은 고인을 단지 오래 활동한 배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동료들을 안심시키고, 시대의 상처를 연기로 껴안으며 관객 곁에 오래 머문 배우로 기억했다.

임권택 감독 역시 고인을 한국 영화의 ‘얼굴’로 불렀다. 임 감독은 "안성기는 꽃미남도 아닐뿐더러 인기를 위해 성적 매력을 뿜어내지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과장하지도 않았다"라며 "안과 밖으로 한국 영화인의 위상을 높인 우리의 간판 얼굴 안성기. 그는 도사이거나 곧 신선이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자택에서 식사 도중 음식물이 목에 걸려 쓰러졌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5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아역 배우로 충무로에 데뷔한 고인의 삶은 성공과 좌절, 도전과 성찰이 겹겹이 쌓인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화려함보다는 성실함으로, 스타성보다는 공감으로 관객과 관계를 맺어온 배우였다. 스크린 위에서뿐만 아니라 현장 안팎에서 쌓아온 신뢰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국민 배우’로 호명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하며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69년에 걸쳐 17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하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을 지켰다. 절제된 연기와 담담한 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세로 동료와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특히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남부군’, ‘투캅스’, ‘태백산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은 1980~199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필모그래피로 꼽힌다. 장르와 배역을 가리지 않는 연기로 한국 영화의 대중성과 깊이를 동시에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안성기의 모습. (네이버영화)

2000년대 이후에도 ‘실미도’, ‘라디오스타’, ‘부러진 화살’ 등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이어갔다. 흥행작과 문제작을 가리지 않는 선택은 배우 안성기에 대한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스크린 중심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기준이 되는 배우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생전에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청룡영화상 등에서 연기상을 받았다.

특히 201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과 국민 문화 향유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고인은 2019년부터 혈액암 투병을 이어왔다. 치료 중에도 영화제와 시상식에 참석하며 복귀 의지를 내비쳤지만, 끝내 다시 현장에 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연기와 삶을 대하는 태도, 한국 영화에 남긴 흔적은 오랫동안 관객과 영화인 곁에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했다. 60여 년에 걸쳐 한국영화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로써 고인은 2005년 보관문화훈장, 2013년 은관문화훈장에 이어 세 번째 훈장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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