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국중박’이 펼친 공공전시의 새 지평

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보통사람 고뇌 조명한 ‘이순신展’
전쟁영웅 아닌 인간주체로 불러내
역사위인 너머의 성찰기회 마련해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에서 열리는 이순신 특별전은 영웅을 기념하는 전시라기보다, 한 인물을 매개로 오늘의 사회를 비추는 공공적 장치에 가깝다. 이 전시는 이미 완성된 성웅의 형상을 반복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기록과 사료를 통해 판단하고 책임졌던 한 인간의 궤적을 전면에 놓는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은 승전의 서사보다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난중일기, 임진장초, 이충무공전서, 장검 등 국보와 보물급 유물 300여 점을 통해 이순신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전투 장면의 극적 연출을 최소화하고 필체와 문서, 생활 유물을 중심에 둔 구성은 분명한 기획 의도를 드러낸다. 이는 이순신을 전쟁의 상징으로 소비하기보다, 기록을 통해 판단하고 책임을 감당했던 주체로 다시 읽게 하려는 선택이다. 그 결과 관람의 중심은 결과에 대한 감탄에서 판단의 과정에 대한 성찰로 이동한다.

전시의 핵심에는 난중일기가 놓인다. 이 기록은 승리를 기념하는 연대기가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 선택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사적 문서다. 정치적 모함과 파직, 백의종군이라는 굴욕의 시간은 문장의 밀도와 여백, 반복된 수정 속에 남아 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문학적으로 복원했던 이순신 개인의 고독과 책임은, 이번 전시에서 실제 사료를 통해 다시 현실성을 획득한다. 상상이 채웠던 틈을 기록이 메우는 지점이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칼과 갑옷보다 먼저 한 인간의 병든 몸과 지친 정신이 눈에 들어온다. 반복되는 질병과 체력의 한계, 불면의 흔적은 일기 곳곳에서 확인된다. 가족과 부하의 죽음을 기록하면서도 다음 날의 출정을 준비해야 했던 일상은 교과서적 영웅 서사에서 쉽게 삭제돼 온 장면들이다. 집안에 전해진 편지와 의복, 생활 유물들은 이순신을 추상적인 국가의 상징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와 조직의 책임을 동시에 짊어졌던 한 사람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 지점에서 그는 위인이 아니라, 극한의 조건 속에서 선택을 반복해야 했던 인간으로 다가온다.

이 전시가 지니는 문화적 의미는 이순신을 결과의 인물이 아니라 과정의 인물로 제시한다는 데 있다. 그는 위기를 단번에 해결한 영웅이 아니라, 매순간 판단을 기록하며 스스로를 점검했던 존재였다. 난중일기는 전략 문서이자 감정의 기록이며, 책임을 미루지 않기 위한 자기 통제의 산물이다. 기록은 위안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붙잡아 두는 최소한의 장치였을 것이다.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전시 제목은 영웅의 소유권을 국가에서 관람객에게로 옮긴다. 전시장에 놓인 한 장의 기록은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누군가에게 그는 조직을 책임지는 관리자일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직업인의 얼굴일 것이다. 이 전시는 존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지, 어떤 판단을 남기고 있는지를 묻는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다시 만나는 이순신은 과거의 위인을 호출해 소비하는 방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결정을 미룰 수 없었던 존재로 현재화된다. 이 전시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판단과 책임의 태도를 오늘의 공적 영역으로 끌어온다. 빠른 해법과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에, 이번 전시 기획은 즉각적인 승리보다 판단이 축적돼 온 시간과 끝내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던 태도에 주목한다.

난중일기 앞에 선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한 개인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 기록을 어떤 기준으로 보존하고 해석해 왔는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택이다. 이 전시는 감동을 환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국가가 역사와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공론화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전쟁의 결과를 강조하는 서사 대신 판단의 과정과 책임의 흔적을 중심에 둔 이번 기획은, 공공 전시가 기념을 넘어 성찰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순신은 더 이상 영웅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공공 전시와 국가 문화정책이 지향해야 할 기준의 이름이다.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며, 선택을 요구하는 것. 그것이 오늘 공공 문화정책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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