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확장 한계 봉착⋯'반도체-제조-AI' 하나의 가치사슬로 묶여야
현장 실증 가로막는 규제 장벽 허물어야 ‘AI 자율제조’ 강국 도약 가능

지난해 수출액이 7097억 달러(약 1027조 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반도체 수출이 1734억 달러로 수출 흐름을 견인했다. 미국 관세 압박에도 자동차 역시 역대치를 경신하며 상승 흐름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반도체와 자동차가 끌어올린 K-수출 이면에는 특정 품목에 기댄 전체적인 수출의 체력 수준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체질을 바꿀 다음 승부처는 제조업의 뇌가 될 ‘AI 융합’을 통한 다복합 지능형 엔진으로 갈아타야 한다는 분석이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은 7097억 달러로 전년 대비 3.8%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축배만 들기에는 내부 구조가 위태롭다. 전체 수출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조사(EBSI)도 15대 품목 가운데 반도체 EBSI는 187.6으로 유일하게 150을 크게 상회했다. 선박(147.2), 의료·정밀·광학기기(111.5) 등 주요 제조업이 회복 국면에 진입했음에도 반도체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이후를 준비하려면 제조업 전반에 AI를 깊게 결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도체만을 파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생산성과 품질,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제조 솔루션 자체를 수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제조-AI’가 하나의 가치사슬로 엮이지 않으면 수출 확장은 한계에 부딪힌다는 의미다.
조선·자동차·배터리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조선업계에서는 선형(船型) 설계 자동화, 용접·도장 공정 최적화, 기자재 예지 정비에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연료 효율을 5~10% 개선하는 AI 기반 운항·설계 기술이 선주들의 핵심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자동차 산업 역시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을 넘어 공장 단위 AI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는 AI를 활용한 전극 공정 관리와 수율 예측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했다. 배터리 수율이 1%포인트(p) 개선될 경우 제조원가는 약 3~5% 절감되고 영업이익률도 1~3%포인트(p) 개선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확산이 만드는 또 다른 기회는 데이터센터 인프라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대비 전력 소비와 발열이 급증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AI·가상자산 부문의 전력 수요가 2022년 460TWh(테라와트시)에서 2026년 최대 1050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액침냉각·수랭식 냉각 등 고효율 냉각 기술이 핵심 투자 분야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은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이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와 서버 경쟁력만으로는 AI 인프라 산업의 과실을 온전히 가져오기 어렵다. 전력·냉각·랙·배전·관제 소프트웨어까지 묶은 ‘통합 데이터센터 패키지’가 새로운 수출 품목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거꾸로 가는 규제가 제조 강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 현장의 AI 적용을 직접 규율하는 법은 없지만, 개인정보·산업안전·전파·통신 관련 규제가 데이터 수집과 원격 제어, 실증을 가로막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에서 실증하지 못한 기술을 해외에서 먼저 시험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경제단체들은 제조 AI 확산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 확대와 데이터 활용 기준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부가 추진 중인 ‘AI 자율제조’ 전략 역시 현장 실증과 규제 완화가 병행되지 않으면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성장지향형 제도 도입과 규제 완화, 고비용 구조 개혁 등 근본적 경제체질 개선을 중점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위기 산업의 재편과 AI 등 미래 산업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를 통해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