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한 직원은 최근 이런 말을 남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국내 대형마트 2위로 호황을 누렸던 홈플러스는 끝없는 추락 끝에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매각이 무산될 경우 청산 수순을 밟게 되고, 직고용 인원만 약 2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실직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는 홈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황’과 ‘경영 위기’는 매년 반복돼 온 단어지만, 올해 유통업계가 체감하는 위기의 무게는 유독 다르다. 고금리·고환율 장기화로 소비 심리는 얼어붙었고, 인건비와 물류비 등 비용 부담은 빠르게 불어났다. 반면 실적 반등의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버티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면세·식품업계를 넘어 K뷰티 대표 기업들까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현대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희망퇴직을 받았고,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도 예외는 아니었다. LG생활건강이 뷰티 판매·판촉직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 데 이어, 아모레퍼시픽 역시 근속 15년 이상 또는 4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K뷰티 붐에도 화장품 업체들은 구조조정의 흐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마트24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하며 비용 효율화에 나섰다. ‘불황에도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편의점 산업마저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신호다. 가장 빠르게 줄일 수 있는 비용인 인건비부터 손대며, 유통업계 전반이 긴축 모드에 들어간 셈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다음은 내가 아닐까”라는 불안이 번지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책 환경은 여전히 현장의 체감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소비 트렌드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대형마트는 전통시장 살리기 프레임에 갇혀 엄격한 규제를 받는 실정이다. 국내외 환경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식품업체들 역시 물가 안정을 명분으로 가격 인상에 제동이 걸린 상황. 이렇듯, 변화한 시장 환경에 맞는 제도적 지원은 부족한데, 규제의 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시도와 투자를 고민하기보다,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부터 떠올리게 되는 배경이다.
새해에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설계하고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낡은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산업이 스스로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결국 물가 안정과 고용 유지로 이어진다. 혹독했던 한 해를 지나온 지금, 유통업계는 생존을 넘어 다시 뛰기 위한 갈림길에 서 있다. 위기의 끝이 추락이 될지, 재도약의 출발점이 될지는 정책과 제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새해만큼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도약’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