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목욕탕 문화 연구·기록 플랫폼 매끈연구소와 일본의 목욕탕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그룹 센토포에버(SENTO FOREVER)가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부산 목욕탕 투어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한다. 양측은 31일, 2026년부터 양사의 협력 프로그램을 본격 운영할 계획이며, 단순한 방문형 관광이 아닌 머무르며 경험하는 체류형 관광 콘텐츠를 목표로 협업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한·일 문화 교류 차원을 넘어선다. 일본 센토 문화를 대표해온 집단이,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한국, 그중에서도 부산을 실험의 무대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부산은 대도시임에도 동네 단위의 목욕탕이 촘촘히 남아 있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도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주거지 깊숙이 자리한 목욕탕, 세신과 대화, 반복되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이다.
외국인 관광객 수가 연 3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미식과 해양 레저 중심의 기존 관광 콘텐츠에 도시의 일상 문화를 결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협업의 배경으로 꼽힌다. '보는 관광'에서 '살아보는 관광'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부산에서 포착됐다는 의미다.
이번 협업의 핵심 인물은 센토포에버 멤버이자 전 세계 500여 개의 목욕탕·사우나·온천을 직접 탐방해온 나츠미 미나토(Natsumi Minato)다. 일본 내 센토 붐을 기록하고 분석해온 그가, 한국에서도 서울이 아닌 부산을 선택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나츠미 미나토는 지난해 12월 21일 부산 영도구 라운지 일렁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의 사우나 붐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며 "지금은 유행을 확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센토 문화 역시 '붐'이 아닌 '지속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이다.
그가 주목한 파트너가 바로 매끈연구소다. 일본의 센토가 이제는 기록과 보존의 대상이 됐다면, 한국의 목욕탕은 아직 현재진행형 생활 문화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센토포에버 멤버들은 부산 체류 기간 실제 한국 목욕탕을 직접 찾았다. 나츠미 미나토는 "한국 목욕탕에는 활기와 관계가 살아 있다"며 "일본 센토가 이미 잃어버린 ‘생활의 밀도’를 여기서 느꼈다"고 평가했다.
그가 특히 인상 깊게 본 것은 세신 문화였다.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경험을 그는 “관광을 넘어 기억에 남는 신체적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한국 목욕탕이 일본 관광객에게 단순한 이국적 시설이 아니라, 감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센토포에버가 전 세계를 돌며 관찰해온 ‘도시와 목욕 문화의 관계’가 부산에서 가장 입체적으로 드러난다는 평가도 이와 맞닿아 있다. 미식, 해양 레저, 온천 타운, 산·바다·강이 공존하는 도시 위에 일상 목욕탕 문화가 겹쳐진 구조라는 점에서다.
매끈연구소는 이번 협업을 통해 목욕탕을 관광 상품으로 소비하는 방식에서 한발 물러선다. 대신 목욕탕을 도시를 이해하는 관문으로 설정했다.
안지현 매끈연구소 소장은 "부산은 관광과 생활의 경계가 비교적 흐릿한 도시"라며 "목욕탕을 통해 부산을 경험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하나의 도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목욕탕을 소비하게 만드는 관광이 아니라, 머무르며 이해하게 만드는 관광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국내 목욕탕·사우나 담론에 대한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매거진 ‘집앞목욕탕’의 목지수 편집장은 “한국에서는 SNS를 중심으로 목욕탕과 사우나가 점수 매기기나 자극적 평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 개인의 경험과 취향이 축적되면, 비교와 과열을 넘어 각자의 리듬으로 즐기는 문화로 정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협력은 일방향 관광에 그치지 않는다. 매끈연구소와 센토포에버는 한국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일본 목욕탕·사우나 투어 프로그램도 함께 개발해, 상호 이동과 경험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기록과 콘텐츠, 관광을 연결하는 장기적 교류 모델을 염두에 둔 셈이다.
부산을 거점으로 시작된 이번 실험은, 목욕탕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통해 도시를 다시 읽고 국경을 넘는 라이프스타일 교류로 확장될 수 있을지를 묻고 있다. 일본 센토 문화가 던진 ‘다음 질문’에, 부산이 하나의 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