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합작법인 대상 유상증자 계획대로 추진
최윤범 회장 경영권 방어에도 ‘청신호’

법원이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허용하면서, 11조 원 규모의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추진될 전망이다. 이번 결정으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MBK파트너스와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24일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번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곧바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고려아연의 신주발행은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라는 목적을 위해 이뤄진다고 보기 어렵고,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특정 주주만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이사의 선관주의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고려아연은 26일 유상증자 대금 납입을 마치고 220만9716주의 신주를 예정대로 발행한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는 미국 제련소 설립을 위한 핵심 절차로 꼽힌다. 고려아연은 미국 정부와 함께 크루서블 합작법인(JV)을 설립하고, 이 법인을 대상으로 2조85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해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크루서블 JV는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하게 된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전부 미국 제련소 건설과 운영에 투입된다. 고려아연은 직접 투자금과 미국 정책금융, 미 상무부 보조금, 차입금 등을 활용해 나머지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짓는 제련소는 2027년부터 단계적 건설에 들어가 2029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제련소에서는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해 총 13종의 비철금속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번 가처분 결과는 경영권 분쟁 구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크루서블 JV는 미국 전쟁부가 지분 40.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고려아연 지분율은 9.9%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간접 보유하는 셈이다.
미국이 탈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고, 이번 투자 역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추진된 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크루서블 JV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최 회장 측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의결권 기준 영풍·MBK 측 지분율은 약 40%, 최 회장 측은 29% 수준으로 추산된다. 크루서블 JV 지분까지 합하면 양측의 격차는 1%포인트(p) 안팎으로 좁혀진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최 회장 측에 힘을 실어줄 경우 경영권 수성에 더욱 유리해진다.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사태’ 이후 MBK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며 3월 주주총회에서도 최 회장 측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분 구도 변화는 이사회 구성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크루서블 JV는 지분 확보와 함께 내년과 내후년 주주총회에서 각각 이사 1명씩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일부 이사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되는 가운데 JV 추천 인사가 이사회에 합류할 경우, 최 회장 측 이사 수가 늘어나 영풍·MBK 측의 추가 이사회 진입을 견제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내고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미래 성장을 견인할 크루서블 프로젝트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어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추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경제 안보에도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영풍·MBK 측은 “기존 주주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과 투자 계약의 공정성,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최대주주로서 미국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가 미국뿐 아니라 고려아연과 한국 경제 전반에 실질적인 윈윈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