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당내 권력 재편 신호탄

국민의힘이 다시 깊은 내홍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당무감사위원회의 친(親)한동훈계 인사에 대한 중징계 권고를 계기로 장동혁 대표 체제와 한동훈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한계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표면적으로는 ‘당 기강 확립’과 ‘당론 준수’가 명분이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주도권을 둘러싼 계파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됐다는 해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힘 내부 갈등의 발단은 당무감사위원회가 16일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2년’의 중징계를 당 윤리위원회에 권고하면서다. 당무감사위는 김 전 최고위원이 언론 인터뷰와 공개 발언에서 당론에 반하는 언행을 반복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동훈 전 대표 체제에서 최고위원을 지낸 인물로, 당내에서는 대표적인 친한계 인사로 분류된다.
이 조치가 알려지자 당내 반응은 즉각 갈라졌다. 장동혁 대표 측은 “당의 기강과 질서를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반면 친한계는 “비판을 징계로 막으려는 정치적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단순한 개인 징계를 넘어 특정 계파를 겨냥한 ‘본보기 처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갈등은 급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공개 반격에 나섰다. 그는 19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정당에서 말을 처벌하기 시작하면 결국 전체주의로 간다”며 “내부에서 모두가 벼랑을 향해 달려갈 때, 누군가는 ‘그 길은 위험하다’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여상원 전 윤리위원장의 발언을 인용하며 “히틀러 중심으로 똘똘 뭉친 나치당을 떠올리게 한다”고 표현해 파장이 커졌다. 징계를 권고한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을 겨냥해 “부정선거 주장과 비상계엄 옹호 발언에 대해선 어떤 징계를 할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동훈 전 대표도 침묵을 깨고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원하는 게 저를 찍어내고 싶은 거라면 그렇게 하면 된다”며 “비판은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라고 말했다. 대표 재임 당시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이른바 ‘당원 게시판 논란’과 관련해서도 “그때 당내에서 원색적인 공격을 받았지만, 징계로 대응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 지도부의 징계 기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장동혁 대표 측 인사들도 맞불을 놓고 있다.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함께 찍은 사진을 언급하며 “정계 은퇴 러브샷”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 전 장관이 최근 “우리 당의 보배를 자른다고 한다”며 한 전 대표를 두둔하자, 그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당 지도부 주변에서는 “지금은 외부와 싸워야 할 때인데 내부 비판이 도를 넘었다”는 불만도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충돌은 단순한 감정싸움이나 개인 간 갈등을 넘어 국민의힘 내부 권력 구도와 직결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장동혁 대표 체제는 출범 이후 ‘강한 야당’을 내세우며 당내 단일대오를 강조해왔다. 반면 친한계는 당의 전략과 노선이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며 견제의 목소리를 내왔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권고는 이 같은 긴장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갈등을 키우는 변수다. 공천 룰, 후보 선별, 당 전략 방향 등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향후 공천 과정과 계파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당내 비판 세력을 정리하려는 시도로 비칠 경우, 오히려 중도층과 무당층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내 원로들의 우려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들어와도 물리친다”며 “지금은 똘똘 뭉쳐야 할 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최근 불거진 계파 갈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권고를 어떻게 결론 내릴지에 따라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징계가 확정될 경우 친한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수위가 낮아지거나 보류될 경우 지도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단결’을 외치면서도 내부 균열을 봉합하지 못할 경우, 국민의힘은 또 한 번 계파 갈등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