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지난주 중국 국가지식산권국(CNIPA)은 중국의 유효 발명 특허 보유량이 세계 최초로 500만 건을 돌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미국의 약 400만 건, 한국의 약 130만 건을 넘어서는 수치로, 중국이 단일 국가 기준 세계 최대의 특허 보유국으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이 같은 성과가 단순한 물량 확대의 결과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국가지식산권국은 특허 품질 제고를 목표로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발명 특허 등록률을 55% 안팎으로 낮췄다. 출원된 특허 두 건 중 한 건 가까이가 심사 단계에서 탈락하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유효 특허 보유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중국의 기술 경쟁력이 양적 축적을 넘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은 제조 중심 국가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기술 권리를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지식재산(IP) 강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등록된 권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분쟁 확대로 이어진다. 중국 최고인민법원과 글로벌 IP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 지식재산권 민사 1심 소송 건수는 연간 3만 건을 상회한다. 미국의 연간 특허 소송 건수가 약 4000건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은 이미 세계에서 특허 분쟁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시장이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으로 배상액 규모까지 확대되면서, 특허 소송은 단순한 권리 다툼을 넘어 실질적인 경쟁 수단이자 제재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 법원이 자국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그러나 공개된 판결 데이터를 보면 반드시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로펌과 연구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특허소송에서 외국 기업이 원고로 참여한 사건의 승소율은 80%를 상회하며, 이는 중국 기업 간 소송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이는 중국 사법부가 해외자본과 기술 유치를 고려해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시장의 환경은 이제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높은 특허 밀도와 활성화된 소송 제도는 중국이 더 이상 기술을 추격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중국은 특허를 기반으로 시장 질서를 설계하고 경쟁을 통제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단순한 기술 유출 방지 차원을 넘어, 현지 기업의 특허 권리 행사로 인해 사업 활동 자체가 제약될 수 있는 리스크를 직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중국 IP 전략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요구된다. 첫째, 방어적 접근을 넘어 경쟁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사전에 분석하는 FTO(Freedom to Operate) 검토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둘째, 적극적인 현지 특허 출원을 통해 법적 보호망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분쟁 발생 시 대응 수단이자 협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다. 셋째, 현지 사법 시스템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외국 기업의 높은 승소율이 보여주듯, 침해가 발생한 경우 법원을 통한 권리 행사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가장 치열한 특허 경쟁 무대가 되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 맞춘 정교한 IP 전략 수립만이 중국 시장에서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고은주 삼성벤처투자 투자심사역·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