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소증’ 90% 이상 출생 전·직후 사망…흉강 내 심장 넣고 배양 피부 덮는 재건술 시행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초로 ‘심장이소증’을 앓는 신생아 치료에 성공했다고 17일 밝혔다. 심장이소증은 심장이 흉곽 안에 위치하지 않고 몸 바깥으로 나와 있는 원인 불명의 초희귀 선천성 질환으로, 환자의 90% 이상은 출생 전이나 출생 후 72시간 내 사망한다.
지난 4월 10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분만장에서 38주 만에 태어난 박서린(여, 8개월) 양은 심장이 몸 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채 뛰고 있었다. 심장을 보호해야 할 흉골이 없고 가슴과 복부의 피부조직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아기가 울면서 힘을 줄 때마다 심장과 폐 일부가 몸 밖으로 밀려 나왔고, 폐 기능이 극도로 저하돼 자가 호흡으로는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웠다. 신생아의 심장이 체외에 완전히 노출된 경우는 국내에서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사례였다.
서울아산병원은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성형외과, 소아심장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다학제 협진을 통해 치료 방향을 논의했다. 흉강 내 공간을 확보해 심장을 넣은 뒤 그 위를 배양시킨 피부로 덮어 흉부를 재건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몸 밖에 위치한 심장을 외상, 감염, 건조로부터 보호하고 호흡과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의료진은 즉시 인공호흡기 치료, 멸균 드레싱 등을 시행했고 생후 다음날인 4월 11일 성형외과 김은기 교수는 개방된 흉부와 노출된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인공피부를 덮는 수술을 시행했다.
최세훈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5월 7일, 14일, 22일 총 세 차례에 걸쳐 심장을 흉강 내에 넣는 수술을 시행했다. 혈압을 유지하면서 주변 장기를 훼손하지 않고 심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최세훈 교수는 간을 아래로 내리면서 조금씩 심장을 안으로 밀어 넣었고 3번째 수술 만에 심장 전체가 흉강 안쪽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어 6월 10일에는 김은기 교수가 박서린 양의 피부를 소량 떼어 배양한 자기유래 배양피부를 흉부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생후 두 달 만에 심장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흉부는 뼈와 같은 단단한 구조물 없이 피부로만 덮여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상태였다. 이에 김남국 융합의학과 교수는 3D 프린팅을 이용해 흉벽이 벌어지지 않게 양측 흉곽을 모아주는 맞춤형 흉부 보호대를 제작했다. 재활의학과 의료진은 박서린 양이 또래 아이들처럼 자랄 수 있도록 재활 치료를 진행했다.

이후 박서린 양은 건강을 점차 회복해 일반병동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최근 퇴원해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다니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향후 최종 교정을 위해 전흉벽을 단단한 인공 구조물로 재건하고 그 주변을 근피부조직으로 덮어야 해서 3세 이상까지 성장을 기다린 후에 추가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다.
박서린 양의 부모는 3년간 14차례의 시험관 시술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12주 만인 2024년 11월 1차 태아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심장이소증을 진단받았다. 처음으로 진료를 받은 병원에서는 생존율이 매우 희박하며, 태어나더라도 3일을 넘기기 힘드니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서린 양의 부모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출산 전부터 이미영 산부인과 교수는 진료마다 긴 시간 정밀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며 심장의 구조와 태아의 건강 상태 등을 지속적으로 살폈다. 주치의인 백재숙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와 최은석 소아심장외과 교수는 치료 계획에 참고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문헌을 조사해 태아의 심장 구조가 정상이며, 치료를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박서린 양의 어머니는 “14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만난 소중한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라며 “심장이소증에 대한 치료 사례와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서울아산병원 모든 의료진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 방법을 찾아내며 희망을 줬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린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였다.
백재숙 교수는 “진료의 매 순간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린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이 의료진에게 분명한 희망이 됐고, 그 희망이 다음 치료 단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됐다”라며 “한 걸음이라도 계속 내딛으려는 마음이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희귀 질환이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최세훈 교수는 “초희귀 선천성 질환인 심장이소증 아기를 살리는 것은 의사 한 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하다”라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한 임상 경험을 갖춘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관점에서 본 평가와 치료 방향을 공유했고, 이를 바탕으로 긴밀하게 협진을 진행한 덕분에 서린이를 살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