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 지하주차장 앞에서 차량을 멈추자 차단기 옆 화면에 주차 구역이 표시된다. 차량이 어느 위치에 주차하면 되는지를 인공지능(AI)이 즉시 안내하는 방식이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면 전광판에는 추천 구역 번호와 함께 차량 번호가 나타나고 화살표가 이동 방향을 알려준다. 안내에 따라 차량을 움직일 때마다 각 지점에 설치된 전광판이 연속적으로 화살표를 표시하며 주차 위치까지 유도한다.
주차 구역에 도착하면 해당 위치에 설치된 전등이 초록색으로 깜빡인다. 차를 세우고 주차를 완료하면 조명은 자동으로 꺼진다. 고개를 연신 돌리며 빈자리를 찾을 필요 없이 AI가 제시하는 안내만 따라가면 주차가 끝난다. 이 단지는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아 동선이 단순한 편이지만 동별·라인별로 지하주차장이 넓게 펼쳐진 대단지에서는 체감 편의성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충전 구역에서도 AI 기능은 동일하게 작동한다. 특히 차량을 주차하면 센서가 전기차 여부를 자동으로 인식해 충전 구역을 배정한다. 별도의 카드 태깅이나 앱 조작 없이 충전기를 연결하기만 하면 충전이 시작된다. 주차와 충전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면서 이용자 번거로움을 크게 줄였다는 평가다.
지난달 26일부터 입주를 시작한 래미안 원페를라는 국내 최초로 통합 AI 주차 플랫폼을 적용한 아파트다. 입주민의 기존 주차 이력과 이동 패턴을 분석해 선호 구역을 학습하고 실시간 주차 현황을 반영해 최적의 공간을 추천한다. 주차장을 여러 차례 순환하며 빈자리를 찾는 과정이 줄어들면서 지하주차장 내 체증과 혼잡도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아파트 단지에서 AI 기술을 마주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AI가 빈자리를 안내하고 로봇이 배달과 쓰레기 수거를 대신한다. 집 안에서는 수면이나 학습 습관을 분석해 환경을 조절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주거 공간 전반에 AI 기술을 접목하면서 일상 속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는 모습이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AI 주차 기술은 향후 자율주행과 결합해 더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HL로보틱스와 협업해 자율주행 로봇(AMR) 기반 주차 로봇 ‘파키(parkie)’ 도입을 검토 중이다. 차량을 지정 구역에 세워두면 로봇이 차량 하부로 이동해 바퀴를 들어 올린 뒤 빈 공간을 찾아 주차를 대행하는 방식이다. 이를 활용하면 기존 주차장 대비 최대 30% 이상의 공간 확보 효과가 기대된다.
AI 기술은 주차장을 넘어 단지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 아이파크 단지에서는 로봇이 입주민이 주문한 상품을 집 앞까지 배송하고 쓰레기 배출도 대신 처리한다. 전기차 화재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열영상 카메라를 활용한 충전 안전 시스템을 도입한 단지도 있다.
생활 관리 영역에서도 AI 활용은 확대되는 추세다. 현대건설은 인천 송도에 AI 기반 수면 관리 솔루션 ‘헤이슬립(Hey, Sleep)’을 적용했고 서울 대치동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에는 학생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 학습 계획을 제안하는 서비스가 도입됐다.

시니어 주거 분야에서도 AI 활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삼성물산은 말동무·응급 알림·복약 관리 기능을 갖춘 홈 AI 컴패니언(반려) 로봇 실증을 진행하며 고령 입주민의 정서 교감과 건강 관리를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고령화에 대응해 비대면 헬스케어와 원격 진료가 가능한 AI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주거 기술은 단지 콘셉트 차원이 아니라 입주민이 매일 체감하는 기능부터 적용되고 있다”며 “주차처럼 이용 빈도가 높은 영역에서 먼저 정착한 뒤, 안전과 건강 관리 등으로 확산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