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건설업계에서 인공지능(AI) 활용이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조경 설계와 안전진단, 현장 관리, 품질 관리까지 AI 적용 범위가 공정 전반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설계 정확도와 시공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중소·중견 건설사는 장기적인 건설 경기 침체로 투자 여력이 부족해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디다. AI 도입을 위한 시스템 구축과 인력 확보가 쉽지 않아 기술력과 현장 적용 범위에서 대형사와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누적 기준 10개 건설사의 연구개발비 총액은 8601억49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8002억4800만 원) 대비 7.5% 증가한 수준이다. 연구개발비에는 스마트·디지털 기술 개발이 포함됐다.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건설업계의 연구개발(R&D) 비중은 타 업종에 비해 높지 않다. R&D 투자 비중이 1%를 넘긴 곳은 삼성물산 1.61%, 현대건설 1.09%, 대우건설 1.04%에 그친다. 세 곳 모두 전년 대비 각각 0.42%포인트, 0.03%포인트, 0.25%포인트 증가했지만 여전히 1%대 수준이다. 대형사조차 기술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견·중소 건설사는 신기술 개발보다 생존이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올해 들어 건설업계 폐업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일까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610곳으로 집계됐다. 2005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하루 평균 1.6곳 이상이 문을 닫은 셈이다. 종전 최고치는 지난해 기록한 576곳이다.

중견 건설사들의 경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신동아건설과 대저건설, 삼부토건 등 9개 중견 건설사가 회생절차를 밟았으며 조기 회생에 성공한 곳은 신동아건설이 유일하다.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 주택 수요가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에 집중되면서 외곽 지역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중견·중소 건설사는 미분양과 현금 유동성 악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10월 말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8080가구로 2013년 1월 이후 12년 9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소·중견 건설사는 AI나 스마트 건설 관련 인프라를 개발할 여력이 부족하다”면서 “줄폐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인건비나 자재비를 감당하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단순한 기술 격차를 넘어 사업 수행 역량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는 데이터 축적과 전담 조직 운영, 반복적인 현장 적용을 통해 공정·안전·품질 관리의 정밀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면서 “반면 중소·중견사는 투자 여력과 전문 인력 확보의 한계로 선별적인 기술 도입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기술 경쟁력은 건설사가 보유한 데이터의 품질과 데이터 활용 역량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건설업에서 AI·스마트 기술 격차가 불가피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건설사는 본질적으로 연구개발 중심 산업이 아니라, 검증된 기술과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산업”이라며 “자체 기술 개발은 여력이 있는 대형사 일부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업에서는 특정 기술이나 장비가 효과가 검증되면 빠르게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라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