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의 일본영화 약진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지속한 흐름이다. 그 시작은 2023년 상반기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었다. 특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젊은 관객은 물론 원작 만화를 탐독한 40·5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전 세대 'N차 관람' 열풍을 일으켰다. 아울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20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두 소년의 사랑을 그린 '괴물'은 동성애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5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동원하며 극장가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결과적으로 2023년 국내에서 가장 흥행한 독립‧예술영화 10위권 중 5편이 일본영화였다. 지난해에는 2024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미야케 쇼의 '새벽의 모든'을 비롯해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등의 일본영화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같은 일본영화의 인기는 올해도 이어졌다. 소라 네오의 '해피엔드'를 필두로 소마이 신지의 '이사', '여름 정원' 등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원정 관람을 떠났다. 특히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은 올해 한국영화 시장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현재 '주토피아 2'와 곧 개봉 예정인 '아바타: 불과 재'의 흥행 성적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높지만, 일본영화가 연말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한국영화는 흥행작은 물론 작품성이 괜찮은 영화마저 손에 꼽기 힘들다. 윤가은 감독이 연출한 '세계의 주인' 정도가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올해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영화의 위기 상황에 관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일본은 변화가 느리다. 코로나19 전후로 OTT가 성장했을 때, 그쪽으로 감독들이 휩쓸려가지 않았다. 극장용 영화를 고집하는 감독들이 일정 수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선 감독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고 있다"며 하마구치 류스케, 후카다 고지, 하야카와 치에 등의 감독들을 호명했다. 여전히 포스트 박찬욱과 봉준호를 찾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국보'로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상일 감독은 한국영화의 부침에 관해 "내가 영화 시작했을 때 20대 때에는 한국 영화의 기운이 세게 올라오는 시기여서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감독 등 일본영화가 배워야 한다고 느끼는 감독들이 많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근데 지금 상황은 좀 슬프다"라며 "현재 한국은 OTT가 강세인데, 좀 세다. 전부 복수, 복수, 복수"라며 한국영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작금의 상황에서 '가능한 사랑'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이창동 감독이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향한 선택은 상징적이다. 국내 배급사들이 시나리오를 외면한 끝에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가 이를 끌어안았다는 상황 자체가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영화적 소통에서 물러선 창작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이를 틈타 영향력을 확장하는 플랫폼 자본의 공세가 한국영화의 위기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한국 장편영화가 경쟁 등 주요 부문에 단 한 편도 진출하지 못한 것과 달리 일본 장편영화는 6편이나 입성했다. 일본영화의 약진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창작자들과 이를 지지한 관객이 함께 만든 결과다. 극장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다시 관객과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이고 생산적인 질문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