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압박·EB 발행 꼼수 논란 속 자사주 ‘맞교환’ 늘까

정부와 여당이 자사주(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을 연내 마무리하려는 움직임 속에, 상장사들이 자사주 처리 방식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그동안 소각 압박을 피해 기업들이 우회로로 활용했던 교환사채(EB) 발행이 금융당국의 경고와 함께 ‘꼼수’ 논란에 휘말리자, 최근 상장사 간 자사주를 직접 교환하는 ‘맞교환’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이목이 쏠린다.

9일 정부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자사주 보유가 지배주주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주가 부양 효과를 희석시킨다는 비판에 따라,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을 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장사들은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자사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했다.

하지만 직접 소각 대신 자사주를 기초자산으로 사채를 발행하는 EB 방식이 최근 급증하며 ‘꼼수’ 논란이 불거졌다. EB는 자사주 처분과 동시에 자금 조달이 가능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지만, 주주 환원보다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과 함께 금융당국이 이를 예의주시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이러한 규제 환경 속에서 상장사들은 직접적인 자사주 맞교환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한 달여 사이 9개 상장사 간 자사주 맞교환이 이뤄지는 등 관련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통상 자사주 교환은 유사 사업군 내에서 사업적 시너지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종 산업 기업 간의 이례적인 교환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류 제조기업 무학과 자동차부품 제조·판매 기업 삼성공조는 이달 15일을 기점으로 쌍방 간 41억 원 규모의 자사주 48만4363주, 26만5548주를 장외처분 방식으로 교환하기로 했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지역 대표기업으로서 지역민과 지속가능경영 및 협력 기반 구축 등 이해관계 일치”를 이유로 들었다. 이러한 상생적 교환을 통해 향후 다양한 공동 사회공헌 및 협력사업 추진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겉으로는 사업 협력 및 시너지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양사가 상호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경영권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비하고 경영권 우군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업적 시너지를 명확히 내세운 교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영상처리 기술 고도화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브이원텍은 제노레이와 26억 규모로 각각 52만812주, 58만4432주를 이날 주식스왑 하기로 했다. 양사는 AI 기술 기반의 사업적 협력 강화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판단이다. 이 밖에 자동차 부품 기업인 구영테크는 삼보모터스와 지난달 20일에, 완구류 기업 오로라는 교육 기업 대교 및 아웃도어 기업 동인기연 등과 11월 10일 자사주를 장외처분해 교환하는 등 업종을 넘나드는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가까워지고 EB에 대한 논란과 규제에 기업들이 우호 지분 확보와 사업 협력이라는 측면에서 자사주 맞교환을 대안으로 적극 검토하는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