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기 가장 쉬운 겨울 여행지 [읽다 보니, 경제]

(사진제공=교보문고)

겨울이 되면 자연스레 눈이 내리는 곳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스키장은 가장 전형적인 겨울 여행지다. 입시를 끝낸 학생들, 방학을 맞은 대학생들, 연차를 쓰기 시작한 직장인들까지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설원을 찾아 움직인다. 스키장은 단순한 레저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모이며 소비가 집중되는 계절적 거점이 되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연애의 행방' 역시 스키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인간관계를 통해 이 공간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겔렌데 마법'을 아시나요?

'겔렌데 마법'이라는 말이 있다. 스키장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뜻으로, 설원의 분위기가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시킨다는 속설에서 비롯됐다.

'연애의 행방'은 이러한 겔렌데 마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주인공 고타는 소개팅으로 알게 된 모모미와 스키장 여행을 떠나지만, 사실 그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결혼 전 마지막 일탈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여행은 곤돌라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방향이 바뀐다. 바로 약혼녀 미유키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사토자와 온천 스키장'에서는 남녀 8인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양다리를 걸친 남자가 연인과 여행을 왔다가 약혼녀를 마주치고, 프로포즈를 준비하러 온 남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며, 단체 미팅으로 온 이들은 새로운 인연과 마주한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의 방향이 빠르게 바뀌고, 그들의 선택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흘러간다.

1도·1cm로 달라지는 사람들의 소비 패턴

스키장은 소설 속 배경을 넘어 겨울 지역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기능한다. 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주요 스키장의 하루 평균 카드 지출액은 약 1300만 원이며 성수기에는 1억 4천만 원까지 증가한다. 리조트와 온천, 식당, 편의점, 렌탈숍 등 주변 상권까지 고려하면 스키장은 지역 전체의 겨울 매출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설이다.

소비 패턴을 결정하는 요인도 명확하다. 스키장에서의 지출은 기온이 –4도에서 –2도 사이일 때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다. 새로 내린 눈은 1.2cm까지 쌓였을 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나타낸다. 반대로 폭설·비·한파특보는 방문객을 줄이고 매출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계절 흐름에 따른 매출 변화도 뚜렷하다. 주말·공휴일 매출은 평일 대비 85%, 크리스마스 주간과 새해 연휴 기간은 79%, 1~2월 방학·설 전 시기는 6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매출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적설량이 아니라 접근성 인프라였다. 고속도로와의 거리, 주변 숙박 시설 수, 셔틀버스 운영 여부 등이 실제 소비 규모를 좌우했다. 이는 스키장이 단일 시설이 아니라 주변 인프라와 긴밀히 연결된 지역 경제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기후 변화는 장기적 위험 요소다. 평균 기온 상승으로 적설량이 감소하고 개장 시기가 늦어지면서 일부 지역 스키장은 2070년 이후 정상적인 시즌 운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된다.

겨울 스키장을 다시 바라보며

스키장은 겨울마다 사람들이 찾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다양한 만남과 변화가 함께 존재한다. 동시에 이 공간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산업이기도 하다. 겨울이 본격화되는 지금, 스키장이 만들어내는 소비 흐름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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