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여유와 절박함 사이, AI를 대하는 일본과 우리

▲이수진 산업2부 기자 (이투데이DB)

최근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복잡하게 얽힌 지하철 노선과 익숙하지 않은 요금 정산 방식 때문에 역무원과 직접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평소처럼 챗GPT 등 인공지능(AI) 챗봇을 열어 필요한 문장을 일본어로 번역해 보여주며 대응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친 일본인들의 모습은 달랐다. 지하철 직원부터 쇼핑몰 점원, 식당 주인까지 대부분이 구글 번역이나 전자사전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단어 수준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AI 보조에 익숙한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색한 모습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더디고 보수적 문화가 강했다. 한국의 변화가 빠른 탓에 비교 효과가 크긴 하지만, 일본의 ‘느림’은 생각보다 확고했다. AI 기술이 생활에 침투한 정도도 한국과 큰 차이가 났다.

현지에서 만난 기업인들 역시 AI 기술 확보에 대해 절박함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기업 생존을 걸고 AI 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들과 달리, 일본 기업은 여전히 한 박자 느린 ‘여유’가 있었다. 한국에서 AI가 생존전략이라면, 일본에서는 여전히 선택적 기술에 가깝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본이 AI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와 연구개발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다만 한국 기업들이 채택하는 ‘치열한 추격전’의 방식과는 다른 느낌이다. 일본은 이를 당장 기업 생존과 직결된 전략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현지에서 만난 한 재일교포 인사는 이 차이를 근본적인 경제구조에서 찾았다.

“한국은 내수 시장이 충분하지 않기에 AI 기술과 이를 활용한 제품·솔루션을 끊임없이 혁신해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어서 글로벌 시장에 팔아야 한다. 반면 일본은 인구 규모가 크고 내수 시장이 워낙 방대하다. 자국 내에서 필요한 만큼의 AI 기술만 적당히 확보해도 경제가 유지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니 투자 규모와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은 수십 년간 축적한 제조업 경쟁력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 제조업 우위를 기반으로 중국·신흥국과의 격차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한다. AI를 중심 전략으로 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일본처럼 AI 흐름을 느긋하게 대하자는 뜻은 아니다. 일본처럼 견고한 기술력과 산업적 기반이 존재해야 외부의 큰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한국은 중국의 빠른 추격 속에 원천기술이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으며, 일본만큼의 거대한 내수 시장도 없다. 일본의 여유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원동력 삼아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혁신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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