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일색이 부른 해외 부동산펀드 부실” 금감원, 설계·제조 단계부터 손 본다

시장 뇌관으로 작용했던 해외 부동산펀드가 기초 설계와 실사·심사 과정부터 근거 없는 낙관에 기댄 관행에 의해 운영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은 시장 위험과 구조적 리스크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방식의 부실 심사가 반복되며 투자자 피해가 커졌다는 판단에서 해외 부동산펀드의 전면적인 대수술에 나섰다.

금감원은 4일 해외 부동산펀드 주요 운용사 CEO들과 간담회를 열고 △펀드신고서 내 자체 검증 내역·시나리오 분석 결과 첨부 의무화 △핵심 투자위험 기재 표준안 마련 △집중심사제 가동 등 개선방향을 안내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SRA·이지스·미래에셋·한투리얼·하나대체·키움투자자산운용 등 6개 부동산펀드 운용사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의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 손실은 올해 상반기 기준 약 4조 원을 넘어섰다. 해외 부동산펀드는 저금리 시기였던 2018~2019년 안정적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기관투자자부터 개인투자자까지 뛰어들었지만, 5년이 지나 만기가 다가온 현재에는 기대했던 수익을 내지 못하고 부실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한투리얼에셋운용의 공모형 부동산펀드 '한국투자 벨기에 코어오피스 부동산투자신탁 2호'를 비롯한 일부 부동산펀드는 최근 전액 손실 처리되는 등 부실이 커지면서 부동산펀드 설계 과정에서 투자자 우선 원칙을 내재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나왔다.

서재완 금감원 부원장보는 "수탁자책임(fiduciary duty) 및 신뢰 회복 차원에서 마련된 최소한의 기준인 모범규준을 지키는 시늉만 하는 행태에 대해서는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라며 "대표이사가 핵심 정보 제공을 위해 본인 책임 하에 직접 나서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체계를 확립할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의 실태 점검에 따르면, 해외 부동산펀드는 설계·제조 단계부터 핵심 절차가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 현지 관리업체 선정 기준은 느슨했고, 실제 실사보고서의 내용은 불충분했다. 특히 펀드 성과에 직접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임대율, 이자율, 환율 등의 변동 폭은 비현실적으로 좁게 시장 개황 수준에 머물러 투자 자산 고유의 위험요인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특히 펀드 운용에 있어 최악의 상황인 기한이익상실(EoD·강제매각)을 평가하더라도 투자손실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작성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투자 심사 과정에서도 주요 계약 조건 비교 검토나 위험요인에 대한 대응전략 마련이 생략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금감원은 "투자자에게 전달된 정보는 합리적 근거 없이 낙관적으로 평가됐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먼저 펀드 신고 시 가칭 실사점검 보고서를 반드시 첨부하도록 했다. 운용사가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필터링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건물 물리적 하자, 유해물질 존재 여부, 현금흐름 타당성, 공실·금리상승을 가정한 최악의 상황 분석 등 핵심 항목이 표준화돼 포함된다.

기존의 정성적 위험 설명은 수치 기반으로 명확히 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부동산 가치 하락에 따른 펀드 성과를 그래프화해 시각적으로 손실 가능 구간을 제시하고, 해외 부동산펀드에 대한 집중심사제를 가동해 복수의 심사담당자를 지정하는 등 심사 과정에서 낙관적 가정이 다시 반복되는 구조를 차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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