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계란에 대한 모든 것(Egg+Everything)을 주제로 한 코너 ‘에그리씽’을 연재한다. 국내 최초 계란 식품·산업·웰니스를 아우르는 대형 계란 박람회 ‘에그테크 코리아 2025(EggTech Korea 2025)’에선 이 코너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계란의 신세계를 더욱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행사는 1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 간 서울 양재동 aT센터 제1전시장에서 열린다.<편집자주>

“사드 왜 안 빼주냐”
2021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경북 성주의 한 참외 농가를 찾았던 날, 도로 건너편에서 계란 두 알이 날아들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에 반대해 온 한 남성이 던진 계란이었다. 이 후보에게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경호원과 수행진이 파편을 맞았고, 남성은 곧바로 제지됐다. 이 후보 측은 "주민 입장에서 나온 행동"이라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항의의 손을 끝까지 '범죄자'로 몰기보다는 목소리를 낸 시민으로 대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한국 정치에서 반복돼 온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인과 계란, 길게 보면 30여 년의 '수난사'다.

2021년 3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강원 춘천 중앙시장을 찾았다가 레고랜드 반대 단체 관계자가 던진 계란에 얼굴을 맞았다. 그는 사건 직후 "그분을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경찰에 전했고,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라며 시위대를 이해한다는 글을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계란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 정치인이다. 3당 합당 반대 집회,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방문, 여의도 '우리 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 연설 등에서 여러 차례 계란 세례를 맞았다. 얼굴을 정면으로 맞았던 2002년 농민대회에서도 그는 얼굴을 닦고 연설을 이어간 뒤 "정치하는 사람들은 한 번씩 맞아줘야 국민들 화가 좀 풀리지 않겠나"라고 웃어넘겼다. 탄핵 심판 때 지지자들이 '부활'을 상징한다며 삶은 계란을 나눠줬던 장면까지 더하면, 노 전 대통령에게 계란은 항의와 응원이 뒤섞인 상징이었다.
계란 수난사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가 한 남성이 던진 계란에 이마와 볼을 맞았다. 그는 "계란 마사지 받고 얼굴이 예뻐졌다"고 농담을 건네며 여유 있게 넘겼다. 같은 해 한나라당 이명박 당시 후보도 경기 의정부 유세 도중 승려 복장의 남성이 던진 계란을 맞았지만 "내가 주가 조작하고서 대선에 나왔겠느냐"며 바로 연설을 이어갔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포공항에서 계란에 맞은 뒤 "정치 테러"라며 배후를 강하게 의심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광주공항에서 청년들의 계란 세례를 받았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정치적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계란의 의미'는 매번 달라졌다.
계란 세례가 단순 해프닝을 넘어서 정국의 기류를 바꾼 사례도 있다.
1991년 6월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는 한국외국어대 강의를 마치고 나오다 학생들에게 계란과 밀가루 세례, 폭행을 동시에 당했다. 앞서 명지대생 강경대 씨, 성균관대생 김귀정 씨가 시위 과정에서 숨지며 반정부 투쟁이 거세던 때였다. 그러나 언론에 '밀가루·계란 범벅 총리 후보'의 모습이 크게 보도되면서 역풍이 불었다. 학생들은 "스승을 폭행했다"는 비난에 직면했고, 거리에 가득했던 시위 열기도 빠르게 식어 갔다. 항의의 상징이 오히려 운동권의 약점으로 돌아온 상징적인 장면이다.

최근까지도 정치인을 향한 계란 세례는 이어지고 있다. 3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계란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백 의원은 얼굴에 계란이 튀자 "민주주의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고발 의사를 밝혔다. 현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기자회견과 국민의힘 의원·지지자들의 맞불 농성이 뒤섞여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계란이 시위 현장에서 '단골 도구'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싸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고, 깨지는 순간 시각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노란색과 냄새, 끈적한 자국은 짧은 순간에도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반면 법적으로는 폭행이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어, 매번 정치적·법적 논쟁을 불러오기도 한다.
결국, 계란 수난사는 "왜 던졌는가"만큼이나 "맞은 뒤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기록하는 장면이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넘기고, 누군가는 정치 테러로 규정한다. 성주 참외 농가에서, 춘천 시장 골목에서, 여의도 둔치와 대학 캠퍼스에서 터진 수많은 계란들 속에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듣지 못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한국 정치의 숙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