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호 국제경제부장

다카이치 총리는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달 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뒤 “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버렸다. 앞으로 일하고 또 일하고 계속 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9월 자민당 총재 입후보 연설 때에는 “외국인이 나라 공원의 사슴을 발로 찬다”며 “규칙을 안 지키는 관광객과 이민자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직설적으로 말한 것이 지방과 보수 유권자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 결과는 높은 지지율로 이어졌다. 7일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중국과 극한 대립이 시작됐지만 지지율 고공행진은 여전하다. 요미우리신문이 21~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 지지율은 72%에 달했다. 또 대중국 자세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이 56%로 부정적 답변율 29%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이런 ‘사이다 정치’가 언젠가는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만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갈등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또 다카이치 총리가 내세운 대규모 재정 투입과 경기부양책이 단기적으로 민심을 붙드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해쳐 인플레이션과 채권시장 불안 등 부작용을 낳을 여지가 크다.
총리가 된 지 기껏 한 달이 지났는데 발언 하나로 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어서는 되겠는가. 돈키호테 같은 좌충우돌 발언과 행동으로 매일 세계를 요동치게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러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는 시장의 눈치를 살피고 외교적으로도 최소한의 선은 지키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같은 날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주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또 이 같은 보도에 트럼프 대통령은 WSJ에 “우리는 한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와 훌륭한 무역협정을 체결했고 세계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며 “이 상태를 유지하자”라는 성명을 보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금 자신을 둘러싼 높은 지지율에 도취할 것이 아니라, 왜 트럼프 대통령이 그토록 이례적인 ‘경고’를 보냈는지를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적으로도 ‘사이다 정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침없는 메시지는 단기적 인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복잡한 경제·외교·안보 현안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은 냉정한 정책 조율과 시장 신뢰 확보이지 자극적 언사나 즉흥적 공약이 아니다. 결국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사이다 화법’이 아니라 리스크의 경계를 넘지 않는 정치적 계산 능력이다.
한국 정치도 다카이치 총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감정과 즉각적 ‘카타르시스’에 기댄 정치 리더십은 민주주의의 균형과 정책의 일관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정치인은 국민을 잠시 속 시원하게 만드는 것보다 정교한 정책으로 국가를 지키고 잘 굴러가게 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