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팬들 사이에서 심상찮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스포츠 업계에서는 사뭇 낯선 용어가 야구판에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바로 '유료 소통'입니다.
K팝에서는 이미 익숙한 문화죠. 아티스트가 일상 사진을 올리면 팬이 댓글을 달고,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처럼 1대1 메시지를 주고받는 과정. 좋아하는 스타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장치이자 넷플릭스와 같은 하나의 '구독' 요소로까지 자리 잡은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이 문법이 이제 야구장에까지 번지는 걸까요? 일부 팬들은 "시대의 변화"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쪽에서는 "스포츠에 굳이 K팝 감성을 가져올 필요가 있느냐"고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중입니다.

아이돌 팬들에게 팬 소통 플랫폼은 이미 익숙합니다. 디어유의 버블, 위버스컴퍼니의 위버스, 노마드의 프롬이 대표적인데요. 이들 플랫폼은 소통은 물론 굿즈·콘텐츠와 연계되는 팬덤 허브 일부를 담당하면서 소속사·아티스트의 팬 비즈니스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팬 소통 플랫폼에서 아티스트는 직접 사진이나 영상을 게재할 수 있을 뿐더러 라이브 방송도 가능한데요.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도 팬들이 일상처럼 사용하는 건 1대1 소통일 겁니다.
시작은 버블이 끊었습니다. 팬은 1대1 채팅방에서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받고 직접 답장을 보낼 수 있는데요. 버블을 1대1 채팅 구독 서비스까지 국내 최초로 선보이면서 눈길을 끌었죠. 아티스트는 내가 설정한 닉네임으로 날 불러주고, 구독을 시작한 날짜로부터 디데이를 표시해주며 몰입도와 유대감을 높입니다.
버블이 인기를 끌면서 다수의 팬 소통 플랫폼이 1대1 메시지 서비스를 도입하고 나섰습니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월 구독료부터 글자 수, 메시지 수 등 규칙이 플랫폼마다 다르지만, 글로벌 팬들을 겨냥한다는 목표는 같은데요. 디어유는 6월 중국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QQ뮤직 내 인앱 형태로 버블 서비스를 시작했고요. 최근 위버스도 프라이빗 채팅 서비스인 위버스 DM을 QQ뮤직에 오픈, 이용자 접점을 확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소통 기능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팬덤의 진입로이자 팬 활동의 중심 허브가 되고 있습니다. 데뷔 직후 팬층을 넓혀야 하는 신인 그룹에게는 효과적인 '입구'로 작동하고, 이미 큰 팬덤을 보유한 팀들에겐 매일 접속하게 하는 루틴형 서비스가 됐죠.
1월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 보이그룹 킥플립 멤버 계훈이 대표적입니다. 버블에서 남다른 플러팅과 언변을 자랑하며 '아기 나훈아', '계어리더(계훈+치어리더)' 등 애칭을 얻은 그는 웹예능 '문명특급'에 단독 출연하거나 가요 시상식에서도 플러팅 멘트를 요청받는 등 특기(?)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후 킥플립은 우렁찬 라이브 무대, 완성도 높은 앨범, 착실한 성장 곡선으로 재차 주목받으면서 최신반인 미니 3집 '마이 퍼스트 플립(My First Flip)' 활동 종료 이후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멤버가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경험하게 되면서 팬들은 친밀한 유대감까지 형성하는데요. 이는 음반 판매나 공연 티켓과는 다른 차원의 충성도, 이른바 관계 기반의 팬덤 로열티를 형성합니다. 이 덕분에 플랫폼 자체도 중요한 팬덤 인프라로 인식되기 시작됐는데요. 앨범 컴백 주기의 공백을 메우고, 팬 활동을 지속시키는 일종의 데일리 루틴이자 커뮤니티 역할을 하게 된 겁니다.

K팝에서 팬 소통 앱은 이미 성공이 입증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플랫폼은 안정적인 월 구독 매출을 확보하고, 소속사는 팬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커머스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죠.
특히 글로벌 팬덤의 성장세가 이 모델의 확장세에 불을 붙였습니다. 실로 국내 아티스트의 해외 팬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데요. 위버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재차 1000만 명을 달성한 바 있죠. 해외 팬 비중은 전체의 87%에 달했습니다.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선 번역 기능, 메시지 규칙 등을 통해 국가별로 즉시 확장할 수 있는 서비스인 만큼 운영 효율도 높습니다.
시장성과 확장성, 운영 효율성까지 검증된 모델이다 보니 타 업계의 도입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고정 팬층이 존재하고 관계 기반 충성도가 매출로 전환되기 쉬운 시장이라면 충분히 재현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인데요. 스포츠도 마찬가집니다.
실로 최근 화제가 된 사건(?)이 있는데요. 프로 스포츠 선수 전문 에이전시인 리코스포츠에이전시에서 팬 소통 앱을 선보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겁니다.
플레이스토어 등에 출시된 앱 '스포디'에는 박건우(NC 다이노스),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안현민(kt 위즈) 등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소속인 야구선수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선수 구독을 통해서 △선수가 직접 올리는 포스트를 열람하고 △선수 커뮤니티에 포스트를 작성하고 △오프라인 이벤트 티켓을 선구매하거나 △선수와 1:1 메신저(DM)가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20만 원짜리 상품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신이 신청한 선수에게 생일이나 기념일 축하, 응원 및 조언 등 영상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하죠.
스포츠 업계가 팬덤 플랫폼에 발을 디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비마이프렌즈의 비스테이지는 K팝 아이돌은 물론 손흥민 소속사 손앤풋볼리미티드, T1, 젠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팬 플랫폼을 구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각 오너들은 비스테이지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유료 멤버십을 운영하면서 콘텐츠나 굿즈를 판매하는 등 온라인 수익화까지 활성화합니다. 구단의 경우 단순 스폰서십 외에도 지속가능한 수익화 모델을 구축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셈이죠.

다만 리코스포츠에이전시의 도전(?)과 관련해 야구 팬들의 반응은 확연히 갈립니다. 새로운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다수의 야구 팬들은 '선수 DM 앱'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에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스포츠 문화가 K팝과는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거센 상황입니다.
스포츠 시장에서도 멤버십을 운영하는 사례는 있습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모두가 운영 중인 '선예매권'이 대표적이죠. 예매 시간을 더 세분화해서 '선선예매'나 '선선선예매'까지 가능하게 한 구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 선수 개개인과 1대1 대화 서비스를 유료 구독 상품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이례적인데요. 한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 가수와 달리 프로 스포츠 선수의 경우 구단·리그·협회·에이전시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탓입니다.
무엇보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가장 큰 재미는 경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팬들이 선수에게 기대하는 것도 일상 대화나 친밀한 교류보다 경기력 유지와 뛰어난 실력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 팬들은 "1대1 메시지 응답하느라 경기력 떨어지면 누가 책임지나", "친목성 콘텐츠가 선수 이미지에 부담을 준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습니다. 급기야 야구 팬들 커뮤니티에서는 "선수 버블이 필요한 게 아니라 차라리 감독 버블을 만든다면 이용할 의사가 있다" 등 냉소 섞인 반응도 포착됐죠.
감정노동에 대한 거부감도 작지 않습니다. 최근 프로야구가 팬덤을 확장하며 뜨거운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지만, 선수들이 팬 개개인의 메시지에 응답하거나 정서적 교류를 하는 행위 자체가 직무 이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거죠.
여기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더 가까운 관계를 산다'는 구조가 고착될 경우, 팀 중심의 응원 문화가 개인 팬덤으로 재편되는 등 스포츠 팬덤 문화를 해칠 수 있다는 걱정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우려가 이어지는 지금, 스포츠 매체들을 통해 '리코스포츠에이전시와 KBO리그나 각 선수들의 구단과 해당 앱 운영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이 전해지면서 야구 팬들의 의문은 더욱 커진 상황인데요.
이런 논란은 팬 소통 플랫폼이 K팝 시장에서는 이미 정착한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더라도 스포츠라는 다른 생태계에 '그대로' 이식될 경우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팀 스포츠는 집단성과 공정성이 핵심 가치인 만큼, K팝과 동일한 문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충돌할 지점이 많다는 의미죠.
특히 구단·리그·에이전시 등 복합적인 구조가 얽힌 프로 스포츠에서 특정 선수가 독자적 채널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낳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데요. 이번 논란이 야구 판의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로 이어질지, 혹은 팬심과 경기력 사이의 균열만 키우는 시도에 그칠지는 지켜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