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배우 이순재 오늘 별세…향년 91세

▲원로 배우 이순재 오늘 별세…향년 91세 (연합뉴스)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로 활동해온 고(故) 이순재가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1세.

고인은 지난해 말까지도 방송·영화·연극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KBS2 드라마 ‘개소리’ 등에 출연하며 연기 의지를 불태웠고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는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공연을 중단한 이후 건강 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됐고, 올해 들어 시상식 참석도 어려워지면서 우려가 깊어졌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그는 4세에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와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돕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방과 6·25전쟁을 차례로 겪으며 성장한 그는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을 보고 배우의 길을 택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1965년 TBC 1기 전속배우가 되며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보고 또 보고’, ‘삼김시대’,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토지’, ‘엄마가 뿔났다’ 등 약 140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국 TV 드라마 역사를 함께 써 내려 갔다. 단역까지 포함하면 출연작은 수백 편에 달한다.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등장한 적도 있을 만큼 ‘일하는 배우’의 상징이기도 했다.

특히 ‘사랑이 뭐길래’(1991~1992)에서의 ‘대발이 아버지’ 역은 한국 가정문화의 단면을 정확히 짚어낸 연기로 65% 시청률 돌풍을 이끌었고, 그를 국민적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극에서도 독보적 존재감을 보였다. 1970~80년대 ‘사모곡’, ‘인목대비’, ‘풍운’, ‘독립문’ 등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를 펼쳤고, 1999년 ‘허준’, 2001년 ‘상도’, 2007년 ‘이산’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배역을 소화했다.

70대 이후에는 스펙트럼을 더욱 넓혔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유머러스한 연기로 사랑받았다. ‘야동 순재’, ‘직진 순재’ 등 새로운 별명을 얻을 만큼 세대 불문 인기를 누렸다. 연극 ‘장수상회’,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어왕’ 등에서는 대사량이 방대한 작품을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 장인’의 면모를 보여줬고, 2023년에는 체호프의 ‘갈매기’ 연출을 맡아 첫 연출자로 나서기도 했다.

연기 인생 중 잠시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에 출마해 당선됐고 국회에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지냈다. 후배 양성에도 힘써 최근까지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한편, 유족 측은 빈소 등 장례 일정을 논의 중이다.

▲원로 배우 이순재 오늘 별세…향년 91세 (사진제공=아이엠티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