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홍준형 칼럼] ‘1호 국정과제’ 개헌에 대한 미련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공법학

상생화합 공론장 마련 쉽지 않지만
87체제 극복할 새 사회계약 필요해
진영 초월한 ‘큰 정치’ 결단 있어야

개헌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123개 중 ‘1호 과제’이다. 5대 국정목표 중 첫 번째가 ‘국민이 하나되는 정치’이고 그 첫째가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이다.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국민이 참여하고 만드는 헌법 개정을 약속했다. 내년 지방선거나 2028년 총선 시점에 맞춰 개헌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연 개헌 공약이 이행될 수 있을까. 전망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도 개헌을 공약하고 국정과제로 내세우고서도 그때그때 당리당략에 따라 개헌을 정략적으로 다뤄온 역대 정부의 기회주의적 행태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라고 다를까 체험된 회의다. 개헌은 모든 정치현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 정권 초기에 밀어닥치는 국정과제들에 비해 우선순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정부는 번번이 개헌을 미뤘고 늘 야당의 비협조를 탓하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개헌은 국회의장이 맡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다 마는 미완성 단골메뉴가 되었다. 그렇게 개헌은 결국 정치적 국면전환을 위해 써먹을 예비 카드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문재인 정부처럼 대통령실이 나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개헌을 추진한 경우도 없진 않았지만 역대 어느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일단 내년 4월 지방선거 때까지 개헌 공약의 이행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2028년 총선? 멸망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생결전이 될 텐데 그 전에 개헌안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부친다는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대통령의 개헌 공약을 의문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약속한 ‘국민이 참여하고 만드는’ 개헌의 실천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이 참여하고 만드는’ 개헌이란 무엇일까. 대통령과 여당은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우리가 우려하는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일방통행 개헌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개헌안 또한 대통령과 여당이 일방적으로 힘으로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당파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회의장이라고 거중조정할 수 있을까? 국민의 뜻이라며 다수의석을 토대로 일사천리 당파적 개헌안을 밀어붙인다면? 그런 개헌안이 채택된다면 그야말로 K-민주주의의 망조다. 통과 가능성이 높은 국민투표는 하나마나일 터, 혹 부결돼도 정부·여당에 알리바이만 줄 뿐이다.

개헌이 말 그대로 권력분산형 ‘진짜 민주주의’를 위한 1호 국정과제라면 국민적 합의 형성을 위한 폭넓고 진정성 있는 숙의과정이 진작에 시작되었어야 했다. 몇 차례 푸닥거리하듯 지역을 순회하며 여론을 청취한다고 ‘국민이 참여하고 만드는’ 개헌이 되지는 않는다. 헌법학계조차 극한 분열, 대립에 빠져 있는데 상생화합의 공론장이 그리 쉽게 만들어질까.

나는 이 대통령이 그의 1호 국정과제 공약을 이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역대정권이 그러했듯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나 다 하는 얘기인데 야당이 따라주지 않으니 별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알리바이를 대는 것도 문제지만, 다수의석을 업고 국민주권을 표방하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개헌은 더더욱 위험하다.

87년의 국민적 합의가 우리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겠다는 민주화에 있었다면, 그동안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국내외 천지사방에서 격랑이 휘몰아친다. 젠지(GenZ)로 불리는 세대의 불만이 비리와 부패 척결을 요구하며 세계 곳곳에서 분출한다. 언젤지 모르나 언제라도 우리나라에도 닥칠 불길이다. 헌법은 변화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해야 한다. 그동안 배제되거나 소외된 미래세대, 소수자들이 함께 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개헌, 아니 새 헌법을 만드는 일은 바로 새 사회계약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개헌은 4·19, 6·10 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 빛의 혁명으로 이어져 온 ‘K-민주주의’의 빛나는 역정에 한 획을 그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역사적 대업을 이루려면 여야를 넘는 초당적 노력이 필요하다. 국회와 함께 하되 당리당략에 매몰되지 않는 비당파, 진영 초월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상황논리를 앞세운 변검(變臉)과 사법리스크 해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집념에서 일관성을 보이지 않기를 기대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개인의 안위나 당파의 이해에 매몰되지 않고 큰 정치, 역사에 남는, 대의를 위한 결단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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