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쌀 시장은 가격보다 ‘재고의 두께’가 더 큰 변수였다. 재배면적 감소로 총생산량은 평년보다 줄었고, 이월재고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격리까지 겹치며 유통재고는 어느 해보다 얇아졌다. 얇아진 시장은 가격 신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했고, 산지·도매·소비자 가격 모두 강세 흐름을 보였다. 쌀값이 27만 원을 넘어선 배경이다.
정부는 지난해 농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약 26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했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 재고가 급격히 줄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는 버팀목이 될 이월재고도 없었다. 재고 완충력이 떨어진 시장은 수급 신호에 더 예민해졌고, 10월 도매가격은 전년 대비 27.8%나 상승했다. 실제 수급 불균형보다 ‘재고 얇음’이 만든 심리적 불안정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80kg 산지 쌀값은 10월 초 24만7952원까지 올랐다가 2025년산 벼 출하가 본격화되면서 한 달간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가격은 더 떨어지지 않았다. 올해 생산량이 예상 수요(340만9000톤)를 13만 톤 웃도는 데 그친 데다, 정부가 추가로 10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하면서 실질 초과물량이 3만 톤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퍼지자 11월 중순 산지 가격은 다시 반등해 22만7992원을 기록했다. 공급 증가에도 가격이 되돌아오는 흐름은 시장이 얼마나 얇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이 같은 불안정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쌀값은 풍년·흉년보다 ‘재고의 두께’와 ‘정책의 타이밍’에 더 크게 흔들린다. 정책 개입은 필요하지만, 격리의 시기·규모·기준이 시장의 자연 조정 속도를 앞서면 가격은 오히려 더 예민해진다. 완충장치가 돼야 할 제도가 때로는 시장 불안정을 키우는 역설적 상황도 반복돼 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물량 조절이 아니다. 시장이 충격을 자체 흡수할 수 있도록 재고 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고, 격리·방출 기준을 중장기 수급 전망과 연동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구조를 고치지 않는 한 가격은 언제든 다시 요동칠 수 있다. 쌀값 27만 원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부족한 것은 물량이 아니라, 시장을 지탱할 ‘완충장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