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핵잠은 레고가 아니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 공식화로 떠들썩하다. 조선·방산업계에서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며 앞다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건조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실제 우리 잠수함 건조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3600t(톤)급 이상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축적돼 있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 분야에서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한국형 SMR인 ‘SMART100’을 개발 중이다. 표면적 기술 토대만 놓고 보면 축포를 터뜨려도 될 것만 같다.

그런데도 취재를 이어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커진다. 재래식 잠수함과 SMR을 잘 만들면 핵추진 잠수함도 잘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스터드를 꼭 맞게 끼워 쌓아 올리는 레고처럼 잠수함에 원자로를 딸깍, 하고 끼우면 되는 일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핵추진 잠수함은 레고가 아니다. 재래식 잠수함을 만들 듯 선체를 만든 뒤, 원자로를 넣어 완성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핵추진 체계가 잠수함 내부 구조와 맞물리는 순간부터 재래식 잠수함과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난제는 잠수함과 원자로를 만드는 기술보다 이 둘을 하나의 레고 성처럼 통합하는 데 있다. 그간 만나온 전문가들 역시 선체와 원자로가 태생부터 하나로 설계돼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근본적 제약이 하나 더 있다. 잠수함용 원자로는 육상용과 다른 기술이라는 것이다. 한국형 SMR 등 우리가 개발 중인 모델은 기본적으로 육지용이다. ‘바다’라는 환경에 최적화한 원자로를 설계·개발해 잠수함에 통합까지 하는 건 우리에게는 경험적으로 상당히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다. 무엇이든 ‘바다에서 사용한다’는 전제가 깔리면 기술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편이라 쉽게 볼 문제도 아니다. 실제 해군용 마린온 헬기가 육군용 수리온보다 수십억 원 가까이 비싼 것도 이런 해양 환경의 높은 난도 때문이다.

우리 군의 30년 숙원이었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사업에 대한 첫걸음이 시작됐다는 점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기술적 자신감만으로 핵추진 잠수함이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핵추진 잠수함은 선체와 원자로가 별개로 존재하는 조립식 구조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통합 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핵추진 잠수함은 레고처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논의가 시작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낙관이 아니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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