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기업성장 발목잡는 막장정치 참담
돌격대 아닌 성찰하는 모습 보여야

거대 정당의 대표는 사령관이다. 정국을 넓게 보며 수많은 걸 조율하는 사령관이다. 자기 진영도 살펴 대오를 정비해야 하고 상대편도 잘 보며 협상·거래·숙의·조정·합의의 지난(至難)한 과정을 이끌어야 한다. 앞만 보며 상대 진영으로 돌격하는 단순한 선봉장과는 다르다. 만약 사령관이 선봉장의 역할로 전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 진영의 내부 문제를 잘 정리하지 못해 내분이 커질 것이다. 더 심각하게는, 상대편과의 관계가 공격 일변도의 호전성을 띠며 정국은 극한 대립과 무한 교착에서 헤맬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 정당을 이끄는 정청래 대표와 장동혁 대표는 둘 다 사령관이기보단 선봉장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정청래 대표는 ‘협치보다 내란 척결이 우선’이라는 기치 아래 야권 전체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나아가 검찰은 물론 사법부에까지 칼날을 겨누었다. 대법원장의 실명마저 거론하며 ‘조희대 사법부가 내란 청산의 걸림돌’이라고 극언을 날린다. 여당 대표가 호전적인 ‘배드캅’을 자처하는 가운데 같은 당의 원내대표와 의견이 충돌하고 대통령실과 불협화음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도 질세라 강성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호칭 없이 지칭하고 독재자·히틀러 등의 극한 표현을 쓴다. 심지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외쳐 부정선거론자와 ‘윤 어게인’ 세력을 고무시켰다. 야당 대표가 극단적인 공격형 투사로 나선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를 걱정하는 당내 정치인들이 반발해도, 온건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싸움닭 스타일의 정치인들이 양당 대표 자리를 차지한 건 그만큼 정치가 양극적 대결 구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파면 이후 정치권은 양쪽으로 확 갈라져 살벌한 전쟁 같은 대립을 이어왔다. 한쪽은 김대중·노무현의 온건 진보 노선에서 더 극단화해 경직된 운동권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다른 쪽은 김영삼·이명박의 온건 보수 기조를 벗고 극단으로 치우쳐 철 지난 냉전 논리에 매여 있다. 여기가 극단화하면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저기는 역방향으로 극단화한다.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정치권의 양극화는 위험 수위에 달했다. 강경한 공격 전문가들이 양당 대표가 된 건 이런 시대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10년째 악화일로인 양극화 속에서 정치권이 국민적 불신 대상이 된 건 당연하다. 옛날에도 국민 밉상이던 정치인들이 많았지만, 요즘처럼 정치권이 통으로 깊은 불신을 받는 건 유례가 없다. 한국의 기업과 문화 예술이 글로벌 무대에서 빛을 발하며 발전을 거듭하는 것과 달리 국민 눈에 비치는 정치는 막장 대결과 진창 교착으로 참담한 상태다. 수많은 이익을 조정해 사회에 활기가 넘치게 해야 하고 각종 국내외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걸머진 정치권은 민주 공화정의 핵심 요소다. 그런 정치권이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총체적으로 불신을 받는다면 체제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양당 대표들의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정치권에 강경 공격수들이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정당의 대표 자리는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존재를 알리고자 안달하는 소수 정당이라면 몰라도 집권을 이뤘거나 꿈꾸는 거대 정당이라면 사령관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정치인이어야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다. 정당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화롭게 조율하는 정치인, 상대 정당과의 관계에서 줄 건 주고 얻을 건 얻어 체제 전반에 생기를 불어넣고 정국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치인이어야 한다. 정·장 두 대표가 자리의 막중함에 부응하기 위해선 그동안 정치판에서 쌓은 돌격대원 이미지를 벗고 좌고우면하는 성찰적 사령관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