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가에서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잇달아 적발되며 교육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에서 연속적으로 AI 기반 부정행위가 드러나자, 교육계는 단순한 '도덕성 위기'를 넘어 "평가·학습·노동 구조 전체가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최근 서울대 교양과목 '통계학실험' 중간고사에서 일부 학생이 AI를 활용해 답안을 만든 사실이 채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시험은 강의실 PC에서 감독 아래 진행된 대면 시험이었다. 기존에 연세대·고려대에서 발생한 비대면 부정행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울대는 해당 분반 재시험을 결정하면서도 "집단적 부정행위는 아니며 개인적 일탈"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연세대에서는 600여 명이 수강하는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 과목에서 대규모 온라인 부정행위가 적발됐다. 교수는 시험 중 손·얼굴·화면을 모두 촬영하도록 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카메라 각도를 조정하거나 화면 위에 다른 프로그램을 겹쳐 띄우는 방식으로 감독을 우회했다.
한 대학교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커닝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절반을 넘었다는 비공식 투표 결과까지 나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 평가 방식이 이미 AI에 취약하며, 대학이 더 이상 기존 방식만으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교육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 부정행위가 단순히 학생 개개인의 탈선이 아니라, 이미 '평가 노동'이 더 이상 AI 시대의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데 있다. 비대면·대규모 강의가 보편화된 대학 환경에서 감독·채점·평가 검증의 노동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져 왔고, 기존의 정답형·객관식 중심 시험은 AI가 손쉽게 대체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구성이 되었다. 교수와 조교는 시험 설계, 채점 검증, 부정행위 탐지 등 복잡한 업무를 감당해야 하지만 제도는 이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평가 방식이 프로젝트형·구술형·오픈북형으로 이동할수록 이들의 노동 시간은 기존 대비 최소 1.5배 이상 늘어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 노동의 변화는 대학 내부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AI 활용 능력'에 따라 강사의 소득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는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AI 기반 학습 분석이나 맞춤형 커리큘럼 설계가 가능한 고숙련 강사들은 기존 대비 1.3~1.8배 높은 강의료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시간당 수입이 전통적인 문제풀이형 강사보다 20~50% 높게 형성되는 곳도 있다. 반면, 암기·반복학습 중심 강사는 AI 문제 생성·자동 채점 시스템의 확산으로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일부 중소형 학원에서는 자동화 도입 이후 강사 인력 수요가 10~30%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에듀테크 산업은 AI 도입과 함께 새로운 직업군을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최근 채용 시장에서는 AI 튜터, AI 채점 모델을 검수하는 인력, 교육 데이터 분석가, 프롬프트 엔지니어처럼 ‘교육'과 '기술’이 결합된 직무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Grand View Research와 IMARC 등은 전 세계 에듀테크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 중에서도 AI 기반 학습 기술 분야가 가장 빠른 성장 섹터로 꼽힌다. 시장이 확대되면서 관련 직무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단순 채점, 문제 제작, 자료 편집처럼 반복성이 높은 교육 업무는 자동화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KDI는 한국 노동시장의 약 39%가 '업무의 70% 이상을 기술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다고 분석했다. 이 범주에는 교육 현장의 루틴 업무도 포함된다. 결국 교육 노동시장 역시 단순 반복형 업무는 줄고, AI를 다루고 설계·검증하는 고숙련 융합형 직무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대학도 AI 금지에서 'AI 허용과 관리'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서울대는 이달 학생 대상 'AI 활용 가이드라인' 워크숍을 열어 공식 지침을 마련하고 있으며, 연세대는 AI 사용과 부정행위 기준을 재정립하는 공청회를 준비 중이다. 주요 대학은 객관식·단답형 중심 시험에서 구술평가·프로젝트형·오픈북 평가로 서서히 전환 중이며, 이를 위해 별도의 AI 교육 혁신 조직과 교육 데이터 분석 전담 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LMS(학습관리시스템)와 AI 기술을 결합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 시작됐고, 향후 ‘AI 기반 평가 운영팀’과 같은 전문 조직이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향후 6~12개월을 교육 노동시장의 본격적인 재편 시기로 전망한다. 대학 내부에서는 AI 허용형 시험이 표준화되면서 교수·조교의 업무는 감독이 아닌 평가 설계·데이터 검증 중심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사교육 시장에서는 AI 기반 학습 코치·데이터형 강사가 고소득군으로 재편되고, 문제풀이 중심 강사는 시장에서 빠르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에듀테크 기업에서는 교육데이터 분석가, AI 모델 검수 인력, 프롬프트 엔지니어 등 융합형 인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직무는 향후 5년간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
이번 대학가 부정행위 파동은 결국 교육계 전체에 "AI 이후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린 사건으로 평가된다. AI는 학생들의 평가 방식만 흔든 것이 아니라, 교육 노동시장의 구조, 직무 요구, 소득 격차까지 동시에 바꾸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AI를 다루는 사람'과 'AI로 대체될 사람'의 경계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으며, 노동의 방향성은 고숙련·고부가가치 역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교육의 미래는 더 이상 AI를 배제하는 공간이 아니라, AI를 전제로 다시 설계되는 구조 안에서 만들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