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률 위반 행위 중 8403개 형사처벌 대상…경영 리스크 확대”

위반행위의 약 34% 중복제재 받아
양벌규정 적용해 법인까지도 처벌
“중복 제재·경미 위반까지 형사처벌”

▲기업 중복 수준별 제재 현황. (사진=한경협)

#. A 씨는 도매업체로부터 납품받아 온라인에서 화장품을 판매해왔다. 일부 제품의 라벨이 훼손된 채 입고됐지만, 내용물에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제품을 판매했다. 그러나 A 씨는 라벨 훼손 제품 판매를 이유로 화장품법 위반으로 최대 3년의 징역형을 부과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기업 활동과 관련이 높은 경제법률에서 총 8403개의 법 위반행위가 형사처벌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 위반행위 3건 중 1건은 형사처벌에 더해 과징금·과태료까지 중복제재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현 제도가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경영 부담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10일 한국경제인협회가 경제법률 형벌 조항 전수 조사를 시행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활동과 관련성이 높은 21개 부처 소관 346개 경제법률에서 총 8403개의 법 위반행위가 형사처벌(징역·벌금 등) 대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7698개(91.6%)는 양벌규정이 적용돼, 법 위반자뿐 아니라 법인도 동시에 처벌받을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 위반행위에 대해 ‘징역 또는 벌금’을 포함한 두 개 이상의 처벌⸱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항목은 2850개(경제형벌 8403개의 33.9%)에 달했다. 중복 수준별로는 △2중 제재 1933개(23.0%) △3중 제재 759개(9.0%) △4중 제재 94개(1.1%) △5중 제재 64개(0.8%)로 나타났다.

일례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사업자 간 가격·생산량 등의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만으로도 담합 합의로 추정될 수 있다. 이 경우 징역과 벌금이 병과될 수 있으며 과징금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더해지면 최대 4중 제재할 수 있다.

건축법에 따르면 사전 허가 없이 도시지역에서 건축(신축·증축·개축 등)하거나 건폐율용적률 기준을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될 수 있다. 점포 앞 테라스, 외부 계단 가림막용 새시(경량 철골) 및 아크릴판 설치 등 영업 편의 목적의 경미한 구조물 변경도 법적으로는 ‘증축’으로 간주하여 처벌 대상에 해당한다.

화장품법도 마찬가지다. 화장품 판매자가 직접 라벨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기재·표시 사항이 훼손된 제품을 판매하거나, 판매 목적으로 보관·진열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한경협 관계자는 “K-뷰티 산업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성장하며 해외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처벌 규정은 법무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 또는 창업 초기 사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현장에서는 실무자의 단순 업무 착오, 친족의 개인정보 제공 거부 등 의도치 않은 자료 누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이를 형사처벌로 규율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대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는 경쟁법상 담합,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중대 위반에 한정해 형사처벌을 운용하고 있어 현행 규정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가 있다. 한경협은 기업집단 지정자료 미제출과 같은 단순 행정 의무 위반의 경우 행정질서벌로 전환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중복제재와 단순 행정 의무 위반까지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현 제도는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저해하고 경영 리스크를 높이는 주요 요인”이라며 “정부가 경제형벌 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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