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통안채가 단기 관리"…시장 분할·외환 대응력 약화 우려
전문가 "통안채 이미 단기국채 역할"…'병존 부작용' 우려
"비용 절감보다 신뢰비용이 더 크다"…WGBI 편입 앞둔 신중론 확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단기 국고채(만기 1년 이내) 도입을 공식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WGBI 편입을 앞둔 시점에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채 만기 구조를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지금 꺼내는 것 자체가 외국인 투자자와 외환시장에 불필요한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구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의 단기 국고채 발행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시장 수요 대응이라든지 효율적 재정 운용 등을 감안해 도입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통안채와 경합하는 문제 등이 제기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참가자 또는 유관기관과 협의해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국채 발행당국 수장이 그동안 금기시돼 온 단기국채 카드를 국감장에서 처음으로 '공론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셈이다.
정부가 단기 국고채 도입 방안을 놓고 "검토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7월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이 국회에서 "초단기 국채 같은 경우에는 통안채와 같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며 말을 아꼈던 것과 비교하면 한 발 더 나간 발언이다.
배경에는 빠르게 불어나는 이자 비용이 있다. 정부는 올해 국고채 차입이자 상환 예산으로 약 30조 원을 편성했다. 앞으로도 적자국채 발행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 장기물 위주의 발행 구조만으론 재정조달비용 부담을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고채 수익률곡선도 단기물 발행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1년 구간 민평금리는 2.445%로 2년물(2.633%)보다 약 19bp, 10년물(3.058%)과 비교하면 61.3bp 낮다. 연초 8.6bp 수준이던 잔존 만기 1년과 10년물 금리 차는 최근 60bp 이상 벌어졌다. 기존 30년물 일부를 1년물로 돌리면 그만큼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재정당국과 여야 일부의 계산이다.
이에대한 통화당국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행은 단기 구간을 통화안정증권(통안채)으로 관리하는 현 체제를 깨면서까지 단기 국고채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단기 국고채 도입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단기 쪽은 통안채에 맡기고 중장기는 국채에 맡기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 등 다른 어떤 이유로 단기 국채를 만든다고 하면 시장이 분할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현재는 단기 채권 관리는 통안채 중심으로 운영하고 정부의 유동성 관리는 한은과 차입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구조상 1년·3년 채권은 통안채 이후 중장기 국채로 구분돼 있어 기술적 개선을 통해 외부에서 동일한 신용등급으로 인식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단기물은 중앙은행, 중장기물은 정부라는 기존 역할 분담을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통안증권이나 원화 외평채를 발행하는 목적이 외환시장 안정"이라며, "통안채나 외평채 여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 당연히 외환시장 대응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단기 쪽 다른 채널을 구축하면서 CD·CP 같은 신용물 금리도 덩달아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결국 기업과 은행, 소비자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전반적으로 올라가 국민경제 전체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타이밍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 제일 걱정스러운 건 WGBI 편입 문제"라며, "원래 올해 11월 편입을 하려다 내년 4월로 미뤄져 편입하기로 했는데, 외국인들이 보통 12월이나 1월에 포트폴리오를 설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채를 사려고 봤더니 만기별 발행 구조가 바뀐다는데, 무슨 변화가 있겠다는 건지 이런 얘기 자체가 나오는 게 시기적으로 너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기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상당히 중대한 변화인데, 굳이 WGBI 편입을 앞두고 그것도 연말에 포트폴리오 짤 시간에 왜 이런 얘기가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개인적으로는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와함께 외환시장의 해석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새로운 채권 발행이 채권 투자자에게 안 좋게 해석돼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도 있다"며, "외환시장 안정화 목적으로 생긴 통안증권과 외평채라는 게 있는데, 그 정책적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고 WGBI를 앞두고 이 시기에 굳이 그걸 왜 하는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채권시장에서도 통안채와 단기 국고채 병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통안채가 사실상 '단기 국채' 역할을 해온 만큼 같은 만기의 발행물이 하나 더 생기면 시장이 불필요하게 양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 국고채 발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우리는 1, 2년 물을 사실상 통안채가 국고채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데, 똑같은 역할을 하는 걸 만든다는건 좋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급이 늘어난다는건 결국 유동성을 흡수한다는 의미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통안채 발행 역사가 짧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우리나라 통안채는 발행된지 기간도 오래됐고, 외국인들도 사실상 단기 국채라고 인정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쟁점은 단기국채 자체의 필요성 이전에 '언제, 어떻게' 꺼낼 주제였느냐로 모인다. 재정당국은 이자비용 절감과 국제 관행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통화당국과 시장은 WGBI 편입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만기 구조 변경 가능성부터 흘리는 것이 외환시장과 투자자 신뢰에 득보다 실이 클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발행 기관 간 경쟁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며, "외환시장에 대한 걱정과 WGBI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런 얘기 자체가 테이블에 올라와 화젯거리가 되는 것 자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단기 국고채를 통한 적자국채 발행 이자비용 절감이란 실익보다, WGBI 편입이라는 더 큰 '신뢰 비용'을 먼저 따져야 할 시점이라는 메시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