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함께한 엔비디아 창립 25주년 행사에서도 그 ‘직업병’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행사장에 참석한 이 회장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이폰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며 웃었다.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는 철저한 영업맨의 시선이다. 경쟁사 제품 사용률을 체크하고,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이 회장의 관찰력과 ‘영업 감각’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들도 많다. 과거 국내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직업병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카메라를 보면 항상 브랜드를 본다. 다 캐논 아니면 소니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유명한 일화도 있다. 취재 현장에서 모 매체 기자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을 본 이 회장이 “삼성 것도 좀 써봐야죠”라며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갤럭시를 꺼내 건넸다는 이야기다. 제품을 직접 보여주고, 써보게 하고, 느끼게 하려는 본능적인 태도다.
2013년 기자가 직접 목격한 장면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재용 회장이 수행원도 없이 홀로 서초 사옥의 삼성딜라이트샵에 나타났다. 그곳에서 그는 외국인 고객으로 보이는 남녀 3명에게 TV 등 삼성 제품들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제품 투어였다. 기자가 이 부회장에게 말을 걸자 "어머니 친구분들인데, 우리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런 모습들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기업 총수가 제품과 시장에 얼마나 밀착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들이다. 20만 명 직원이 있는 글로벌 대기업의 경영자이면서, 동시에 매장을 지키는 제 1의 영업사원인 셈이다.
이재용 회장은 경영자로서 늘 ‘현장’과 ‘제품’을 말해왔다. 그의 발언에는 늘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이 깔려 있다. 글로벌 CEO들과 만나도, 공급망과 기술을 논의할 때조차도 결국 그의 화두는 ‘제품’이다. 기술이 아무리 고도화돼도, 결국 그것을 쓰는 건 사람이라는 원칙을 잊지 않는다.
이제 그의 ‘직업병’은 삼성의 체질이 됐다. “삼성은 기술력이 좋고, 잘 팔리기 때문에 강하다”는 단순한 공식이 아니다. 총수가 직접 제품을 보고, 만지고, 설명하는 회사는 흔치 않다. 기술력과 경영전략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소비자의 손끝에서 완성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삼성은 알고 있다.
경영 구루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목적은 단 하나, 고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용 회장의 '직업병'은 바로 이 본질을 실천하는 것이다. 회의실이 아닌 현장에서, 보고서가 아닌 실제 제품으로 고객과 소통한다.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난 지금, 이 회장은 보다 자유롭게 ‘영업사원’으로 뛸 수 있게 됐다. 글로벌 파트너십을 직접 주도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바이오·모바일·디스플레이 등 삼성을 구성하는 모든 산업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시너지를 만든다. 경영복귀 이후 보여준 행보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공세’다.
삼성의 미래는 총수의 직업병에서 시작된다. 소비자를 보고, 제품을 보고, 세상을 보는 ‘영업사원의 눈’. 삼성의 성장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