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법적 근거 없이 자금 보유…부당이득 돌려줘야"
삼영중공업 즉각 항소 "해당 자금은 전보 성격"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으로 꼽히는 관정이종환교육재단(관정재단)을 설립해 평생 모은 재산 1조7000억 원을 환원한 '1조 기부왕' 고(故)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의 차녀가 부친이 세우고 장남이 2대 주주로 있는 삼영중공업을 상대로 낸 가수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최욱진 부장판사)는 4월 11일 이 전 회장의 차녀 이모 씨가 주식회사 삼영중공업을 상대로 낸 가수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는 상속인인 원고에게 84억1000만 원과 연 12%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사건은 이 전 회장이 생전 자신이 운영하던 삼영중공업에 여러 차례 걸쳐 입금한 약 218억 원 가운데 168억 원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 자금이 '회사에 빌려준 돈'이라며 반환을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사회 결의 없이 체결된 대여계약은 무효"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이 전 회장이 별세하자, 차녀 이 씨가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대여계약이 무효라면 삼영중공업이 부친의 자금을 법적 근거 없이 보유한 것이고, 이는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상속인으로서 법정상속분(1/2)에 해당하는 84억 원을 돌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삼영중공업은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 측은 "이 전 회장이 회사에 입금한 자금은 스스로 발생시킨 회사의 손실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였다"며 "이익을 얻은 것이 없어 부당이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전 회장의 독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설령 부당이득으로 인정되더라도 이미 자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반환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는 "이 씨가 생전 부친에게서 이미 토지와 건물 등을 증여받았기 때문에, 자금을 단순히 법정상속분인 2분의 1 기준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수익(생전에 물려준 재산)을 고려한 구체적 상속 비율이 상속재산분할심판을 통해 확정돼야 하며, 이 절차는 가정법원 관할에 속하므로 민사법원에 제기된 이 청구는 관할 위반으로 부적법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영중공업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상속인 중 한 명인 원고가 부당이득을 얻은 회사에 법정상속분에 해당하는 금액의 반환을 구한 것"이라며 "상속재산을 나누는 심판과는 당사자도, 성격도 다르다"고 판단했다. 삼영중공업은 이 전 회장의 자금을 부당하게 보유한 채무자에 불과해, 이번 사건은 가정법원 관할의 가족 간 상속 분쟁이 아닌 민사법원 관할의 금전 다툼이라는 설명이다.
또 재판부는 "고인이 회사에 넣은 자금은 다른 재판에서 미변제 원금이 약 168억 원으로 인정됐지만, 대여계약이 무효로 확정됐다"며 "그 결과 회사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해당 자금을 보유하게 됐고, 이는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설령 나중에 이 씨의 특별수익 여부를 따질 일이 생기더라도, 그 가능성만으로는 지금 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법률상 원인 없이 얻은 금전상 이익은 이미 사용했더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며, 삼영중공업이 이 씨에게 84억 원가량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삼영중공업은 즉각 항소했다. 회사 측은 "법리적으로만 보면 부당이득이 될 수 있지만, 해당 자금은 선대 회장이 회사에 끼친 손해를 메우기 위한 전보 성격이었다"며 "이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반환하라고 하면 손해가 그대로 (회사에) 남게 된다.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 금액만큼 상계돼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은 12월 3일 항소심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열 예정이다.
한편,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석준 삼영화학그룹 회장은 소송 제기 4개월 뒤인 지난해 8월 삼영중공업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현재는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영중공업 지분 36.25%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지난해 2월에는 부친을 이어 관정재단 이사장에도 취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