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지원사업으로 2026년까지 161억 원 규모로 진행

의사가 진단하고 환자가 따르는 구조에서 벗어나, 의사와 환자가 함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환자에게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선호를 반영해 의료진과 함께 최선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공유 의사결정(Shared Decision-Making·SDM)’이 새로운 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30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강남에서 열린 ‘환자-의사가 함께하는 의사결정 모형개발 및 실증연구사업 2025년도 성과교류회’에서 참가자들은 이러한 방향을 공유했다.
해당 사업은 2023년 보건복지부 지원사업에 선정돼 2026년 12월까지 총 161억 원 규모로 진행된다. 사업단은 한국형 SDM 모델의 표준화를 목표로, 의료현장별 맞춤형 모형 개발·다기관 임상·디지털 도구 구축·의료진 교육체계 정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성윤경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약제의 다변화로 인해 환자 결정권이 약해지는 만큼 치료선택 과정에서 공유의사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는 병의 활성도와 부작용, 생활 여건에 따라 치료 약제를 자주 변경해야 한다. 성 교수는 “혈압환자 100명을 보는 것보다 류마티스환자 5명을 보는 게 더 어렵다”며 “같은 약이 어느 날은 듣다가도 다음 달엔 듣지 않는 등 질환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치료제 선택지가 생물학적제제, 바이오시밀러, 야누스키나제(JAK) 억제제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환자 스스로 약의 특성과 부작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성 교수는 “정보가 과도하게 세분화되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오히려 줄었다”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환자에게 이해 가능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와 함께 최적의 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양대병원 연구팀은 13개 의료기관 300명 환자를 대상으로 공유의사결정 대화모형과 의사결정보조도구(Decision Aid), 환자교육 프로그램을 결합한 임상연구를 수행 중이다. 성 교수는 “공유의사결정으로 비용, 내원 가능성, 자가주사 여부 등 환자 개별 선호를 반영하고 의료진이 공감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구현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환자만족도와 치료 지속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이 좋은 치료제가 많이 나와 환자 결정권이 약해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고 환자마다 병의 양상이 달라 치료가이드라인을 세우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혁수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특히 중증 슬관절염의 경우 환자마다 진행 양상과 원인이 달라 같은 수술을 시행해도 회복 속도나 만족도가 크게 차이 난다. 의료분쟁도 많이 발생하고 수술의 경우에도 환자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10% 이상이다. 통증이나 염증을 억제하거나 관절의 윤활 역할을 하는 주사를 투약하는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은 예측 가능한 근거가 부족해 부담이 적은 치료법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치료 강도를 높이는 접근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합병증 발생 확률, 기능 개선 정도를 예측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환자가 치료과정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SDM 모델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AI 기반 예후예측 시스템과 시청각 대화도구를 접목해 고령 환자도 이해하기 쉬운 인터페이스를 구축했다. 한 교수는 “글보다 영상 중심으로 구성해, 환자가 버튼을 누르면 음성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데이터와 영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면 환자의 치료 만족도와 신뢰도가 함께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석 연세대치과병원 치주과 교수는 “치과 진료야말로 환자와의 공동의사결정이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에서 임플란트 시술률이 가장 높지만, ‘빨리 뽑고 심는 게 낫다’는 문화가 환자 가치나 장기 치료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연구팀은 전국 12개 치과대학과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 참여하는 ‘치아 발치 여부를 환자와 함께 결정하는 SDM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환자, 치과의사, 치과위생사가 함께 판단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며 “단순히 진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경제적·심리적 요인을 반영한 ‘협력적 결정’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김종우 환자-의사가 함께하는 의사결정 모형개발 및 실증연구 사업단 단장(경희대병원장)은 “SDM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자원 낭비를 줄이며,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대적 해답”이라면서 “이번 사업은 내년에 종료되지만, 향후 환자 중심 치료로 의료 질을 높이고 임상현장에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