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생산적·포용금융에 180조, 규제 혁파 화답해야

▲장효진 금융에디터 겸 금융부장
하나금융그룹이 생산적·포용금융에 100조 원을 투입한다. 우리금융그룹은 80조 원을 수혈하기로 했다. 모두 5년간 단계적으로 집행하지만 총액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올해 예산 673조 원의 4분의 1을 넘는 수준이다.

자산 기준 1, 2위인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이 아직 투자 계획을 내놓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4대 금융그룹이 쏟아부을 돈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찍힐 게 분명하다. 이전 정권에서의 상생금융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금융그룹의 결단은 정부가 말하는 ‘부동산 쏠림 완화’, ‘혁신산업 자금공급’ 기조와 정확히 맞물린다. 금융은 성장과 발전을 앞당기는 마중물이라는 점에서 첨단산업, 벤처·중소기업 지원, 취약차주 부담 완화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부의 일방적 요구에 금융회사가 끌려가는 모양새가 불편하다. 관치금융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코뚜레에 코를 꿴 소의 주인처럼 고삐만 쥐고 흔들어대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볼썽사납다.

금융당국은 이제라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적극적인 규제 개혁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금융회사의 사회적 기여는 규제를 완화할 때 오히려 커질 수 있다. 규제 혁신 없이는 생산적 금융도, 포용적 금융도 현실화하기 어렵다.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보다 먼저 금융회사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

현장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정부 정책에 호응하고 있지만 절박하게 건의해 온 규제 개혁 과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이자 장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규제 환경을 만들어 놓고선 왜 그러냐며 따져 묻는 모순된 상황이 계속된다. 답답할 노릇이다.

금융회사의 비금융 진출을 가로막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와의 규제 역차별이 대표적이다. 빅테크는 사실상 금융업을 하지만 금융 규제가 느슨하다. 반면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에 묶여 있다. 빅테크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을 위해 인수합병(M&A)에 나서고 그룹 차원의 역량을 집중할 때 금융사들은 상표권 출원에 머무는 초라한 현실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첨단기술이 발전하는 지금, 1982년 도입된 금산분리 규제가 그대로 작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 아닐 수 없다. 디지털전환 시대의 금융 혁신과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면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재래식 무기를 들고 ‘인공지능(AI) 드론’을 상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다른 규제 개선 과제도 산더미다. 위험가중치 조정과 같은 자본 규제 합리화, 망분리 규제 대폭 완화, 업권 칸막이 제거 등을 서둘러야 한다. 금융당국이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살펴보고는 있지만 체감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규제 개선은 속도가 생명이다. 방향이 아무리 옳더라도 실행이 늦어지면 개혁의 의미는 퇴색된다. 기업은 손쓸 겨를도 없이 절호의 기회를 날리게 되는 셈이다. 절차적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움직이는 ‘타이밍’이다.

금융당국은 탁상에서 벗어나 변화의 파도를 먼저 읽어야 한다. 규제 혁신의 추동력을 살릴 때 생산적·포용금융은 구호를 넘어 우리 경제의 진정한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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