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로봇 확장…K-하드웨어 ‘핵심 공급축’ 부상
삼성·하이닉스·이노텍·전기 등 글로벌 AI 생태계 파트너로

‘APEC CEO 서밋’을 계기로 엔비디아와 한국 전자·부품기업 간 ‘AI 하드웨어 동맹’이 가시화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이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글로벌 AI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으로 해석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전기·LG이노텍 등 국내 주요 제조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대만 폭스콘과 함께 차세대 ‘베라 루빈(Vera Rubin)’ 플랫폼 서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플랫폼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를 통합한 초대형 인공지능(AI) 서버로, 차세대 AI 반도체 수요를 견인할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이를 기반으로 AI 반도체를 넘어 로봇·디지털트윈·엣지컴퓨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며, 이 과정에서 한국의 하드웨어 산업이 공급망에 참여할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엔비디아는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박람회 ‘CES 2025’에서 ‘피지컬 AI(Physical AI)’ 전략을 공개했다. 이는 로봇과 물류·제조 현장을 가상환경에서 시뮬레이션하고, 실제 환경의 물리 법칙을 학습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으로 ‘옴니버스(Omniverse)’ 생태계와 결합해 발전하고 있다. 반도체·카메라모듈·센서·패키징 등 부품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은 이러한 생태계에서 핵심 하드웨어 공급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이노텍·삼성전기 등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와 로봇 비전 시스템 부문에서 엔비디아 플랫폼의 실질적 파트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늘린다는 점 자체가 의미 있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대기업뿐 아니라 몇몇 기업에 협력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서도 기대감이 감지된다. 한 장비 업체 관계자는 “젠슨 황의 방한이 당장 소부장 수혜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대기업과 협력 구조가 확대되면 결국 중소 공급사에도 긍정적 파급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협력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는 반도체다. SK하이닉스는 D램 3사 중 최초로 고대역폭메모리(HBM)4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했으며, 삼성전자도 HBM3E와 HBM4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글로벌 AI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번 APEC을 계기로 엔비디아와의 협력 논의가 한층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Blackwell)’ GPU 생산이 초기 단계인 만큼,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AI 메모리 납품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AI 학습용 D램·SSD 등 신규 라인업 납품 확대가 유력하며 AI 서버용 고대역폭 메모리 수요 증가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
엔비디아가 미래 사업으로 점찍은 ‘피지컬 AI’에는 다량의 전자부품이 들어간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 센서, 기판 등이 이 생태계의 핵심 하드웨어로 활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업계는 아직 구체적인 공급 논의가 시작된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피지컬 AI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주로 대형 완제품 업체를 통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APEC에서 직접적인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황 CEO의 방한은 미국 정보기술(IT)·테크 기업들에게도 한국 시장을 탐색할 중요한 계기로 여겨진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전자제품 수입 비중에서 중국은 60%에서 20% 수준으로 줄었다”며 “미국은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공급 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한국이 그 유력한 파트너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경 연구위원은 “실리콘밸리 기업 입장에서는 APEC이 한국 내 AI 서비스 영업의 기회이자, 정부의 GPU 조달 정책과 맞물린 접점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시장 수요를 확보하려는 흐름과도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