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개그맨들이 자신들의 댄스 패러디를 분석하며 공무원을 걱정하고 있는 걸까요? 수요 없는 배려에 감사함을 표해야 하는 묘한 상황에 지켜보는 이들도 헛웃음이 지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So easy“, ”맞긴 해“라며 이들을 응원하는 진짜 공무원이 등장하는 상황. 도대체 이건 무슨 대화일까요?
2002년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명곡 ‘Sea of Love’.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베이커 비치에서 찍은 진지한 뮤직비디오는 당시 감수성 충만한 팬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 있었죠.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노래가 대한민국 지자체 공무원들의 손에서 밈 전쟁의 불씨가 되어 버렸습니다.

올여름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원본 뮤비를 똑같이 따라 한 패러디 영상을 올리면서 이 불길함이 시작됐는데요. 이어 양주시가 피식대학을 따라 하고 충주시가 이어받고, 농촌진흥청이 또 이를 따라 하더니 춘천시, 울산 남구까지 줄줄이 뛰어들었죠.
이런 공무원 유튜브 외도의 조상님이자 톱티어는 충주시 ‘충주맨’입니다. 본명 김선태 주무관, 충주시청 홍보 담당으로 2019년 유튜브로 데뷔(?)해 ‘관짝밈’, ‘깡’ 등 각종 패러디 영상을 터뜨리며 전국구 스타가 됐죠. 병맛 감성과 망가짐을 불사하는 연기로 충주시 유튜브를 구독자 90만 채널로 키워냈는데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직접 언급했을 정도로 상징적 인물이 됐습니다.
방송계로도 발을 넓힌 충주맨은 활동을 드라마처럼 이어갔는데요. 8월 충주 파크뮤직 페스티벌 무대에는 군복 차림으로 등장해 우즈의 ‘드라우닝(Drowning)’을 끝까지 완창했죠. 우즈과 군 복무 당시 역주행을 이끌었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객석은 술렁였고 네티즌들은 “회식 2차로 단련된 고음 처리”, “살면서 공무원 직캠은 처음 본다”라며 폭소했는데요. 이후에는 “수익금 미정산과 민원 때문에 지쳤다”며 ‘가수 은퇴 선언’ 영상까지 내놓으며 격한 패러디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현실과 농담을 섞어내며 더는 밈이 아닌 완결된 서사로 끌어올린 그였죠.

충주맨의 아성을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난 곳은 경기도 양주시였는데요. 홍보정책담당관 정겨운 주무관이죠. 활동명은 ‘진 주무관’, 띄어쓰기 없이 붙여 ‘진주무관’으로 불립니다. 기획과 제작을 맡은 채지석 주무관인 ‘채 주사’와 함께 두 사람은 소품비 5000원으로 플라이투더스카이 뮤비를 다시 패러디했는데요. 경기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열쇠를 목걸이로, 클립을 귀걸이로 쓰는 발상은 저예산이지만 B급 감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벌에 쏘인 강아지상’이라는 평가 속 “충주맨의 대항마”, “피지컬로 승부한다”는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그 인기는 팬사인회로도 이어졌는데요. “진짜 옵니다”라며 등장을 예고했던 진주무관은 플라이투더스카이 뮤비 속 그 모습 그대로 양주 천만송이 천일홍 축제에 나타났죠. 당시 현장에선 진주무관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줄이 길에 늘어서 생각지도 못한 ‘스타 마케팅’이 벌어졌는데요. 공무원이 축제 현장에서 연예인처럼 팬 서비스를 하는 장면은 기사로 보도됐죠.
양주시 공식 유튜브 영상은 30일 현재 39만 회 조회수를, 숏츠 영상은 119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찍고 우셨나요, 울고 찍으셨나요”, “충주맨이 처음 느낀 위기”, “갈게요 갈게”, “공무원들 근무환경 많이 힘들어졌네요”,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양주를 처음 알았다. 홍보 효과 제대로다”라며 진주무관을 응원하는 댓글이 가득하죠. 하지만 이런 반응만 있는 건 아닌데요.
지역 카페에는 “합성 같아서 낯뜨겁다”, “공무원들 짠하다”, “세금 아깝다”는 불만이 이어졌죠. 한 시민은 “이럴 시간에 민원이나 해결해 달라”라고 꼬집었고, 또 다른 이는 “웃자고 한 건데 너무 심각하게 보는 듯”이라며 옹호에 나서기도 했죠. 결국, 같은 영상이 누군가에겐 지역을 알린 신박한 아이디어, 누군가에겐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로 보인 셈입니다.
논란의 핵심은 공무원들의 ‘자발성’인데요. 충주맨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처음엔 시장님이 무리한 걸 시키셨다. 그래서 결재는 없다, 간섭은 없다, 소재 터치도 없다”는 조건을 걸고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털어놨는데요. 그 덕분에 자유롭게 밈을 풀 수 있었죠.
그러나 후발 지자체는 다릅니다. 일반 행정직·기술직 직원까지 차출돼 억지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죠. 끼 없는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업무 지시와 다를 바 없는데요. 실제로 한 지자체에서는 영상이 화제가 되자 당사자 가족이 법적 대응을 경고했고 콘텐츠가 삭제되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이런 강제 동원이 공직의 매력을 더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점인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20~34세 청년 중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12만9000명, 작년보다 3만 명 줄어 집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4년 연속 감소세죠. 전국공무원노조는 “젊은 인재들이 경제적 이유로 공직을 떠난다”고 지적했는데요. 임금은 민간에 비해 여전히 낮은데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차출까지 더해진다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떠안는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죠.
단독 무대였던 충주맨의 세상에 양주시 진주무관이 등장하면서 지자체 홍보는 대중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됐는데요. 두 사람은 분명 새로운 모델을 열었지만 단순한 모방으로는 성공할 수 없죠. 자발성과 창의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무원들의 부담만 커지고 행정의 신뢰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지자체 홍보에 재미와 위트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죠. 시민들의 웃음과 호응은 곧 지역을 알리고 공감을 모으는 힘으로 이어지는데요. 모든 웃음이 행정의 성과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