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황이시여"…트럼프 말말말, 진심일까 전략일까 [해시태그]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트황. 도널드 트럼프(Trump) 대통령과 황제(皇)를 합친 별명이자 밈. 스스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왕 만세!(LONG LIVE THE KING!)”라고 올린 그가 가장 좋아할 수식어일 수도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온 권위적인 화법과 돌발적 언행을 풍자하는 단어죠.

문제는 그 별명이 농담만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유엔총회 연설에서부터 방송사 면허 취소 위협, 타이레놀 논란, H-1B 비자 폭탄, 중국 유학생 허용과 한국인 구금 사태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정말 진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격한 파문을 불러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이하 현지시간) 6년 만에 유엔총회 연단에 섰는데요. 이곳에서도 트황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고장 난 프롬프터를 가리키며 “프롬프터가 작동하지 않으니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겠다”고 말해 좌중을 긴장하게 하더니 곧바로 유엔을 향해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비판을 쏟아냈죠.

사실 도착 장면부터 사건이 있었는데요.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중 갑자기 기계가 멈추는 ‘의전 사고’가 발생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유엔에서 내가 받은 건 멈춘 에스컬레이터와 고장 난 프롬프터뿐”이라고 꼬집었는데요. 농담처럼 시작해 비난으로 끝나는 ‘트럼프식 연설’의 전형이자, 유엔에 대한 그의 불신을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 참석하기 위해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에어포스원에 오르면서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AP/뉴시스 )


트럼프 대통령은 보건 현안으로도 불을 붙였습니다. 22일 임신부의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자폐 위험을 400% 높인다는 주장을 펼친 건데요. FDA는 라벨 변경을 검토한다고 덧붙이며 켄뷰(Kenvue)의 주가는 7% 급락했습니다.

그는 “2000년 대비 자폐증 유병률이 400% 늘었다”는 보건당국 통계를 제시하며 “타이레놀을 아기에게도 주지 말라”는 말을 수십 차례 반복했죠. 심지어 쿠바를 언급하며 “쿠바에는 타이레놀이 없는데, 그래서 자폐도 없다고 들었다”고 말해 파장은 더 커졌는데요.

사실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부가 복용 가능한 비교적 안전한 약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부프로펜이나 나프록센 계열은 태아에 해로워 권장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들이 타이레놀을 선택해왔죠. 전문가들은 “자폐와의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즉각 반박했습니다. 영국 보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나는 트럼프가 아니라 의사를 믿는다”고 잘라 말했죠.

트럼프 대통령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외신들은 다국적 제약회사를 비싼 약을 팔아치우는 탐욕스러운 집단으로 지목하며 ‘마하(MAHA·미국을 다시 건강하게)’라는 자신의 대선 구호와 연결하려는 정치적 계산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피닉스 외곽 글렌데일의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열린 보수주의 활동가 찰리 커크 추모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타깃은 언론으로도 향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CNN, NBC 등 주요 방송사를 ‘가짜 뉴스’라고 몰아세운 바 있죠. 보수 논객 찰리 커크가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심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집단은 살해범을 자기들과 무관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 한다”고 발언하자 ABC는 방송을 무기한 중단했습니다. FCC 위원장은 면허 취소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일은 커졌는데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발언이었지만 그는 “미국에 좋은 소식”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반언론 정서를 가진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였는데요. 실행은 불가능하지만, 발언 자체로 정치적 효과를 얻는 방식이죠.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 카드로 반이민 정책을 써왔는데요. 이번에는 전문직 비자 H-1B가 대상이었죠. 신청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에서 무려 10만 달러로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외국인 전문직 인력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국가 안보를 약화시킨다”며 “이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선언했대요. 발언 직후 미국 빅테크 업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H-1B는 STEM 분야 고급 인재 유입 통로로, 구글·MS·아마존 등에서 대규모로 활용하는데요. 워싱턴포스트는 “합법적 이민의 주요 경로를 막는 것”이라 분석했고, 인도 출신 전문가 비중이 큰 IT 업계는 크게 동요했죠.

이에 빅테크 기업은 해외 체류 중인 직원들에게 긴급 귀국령을 내렸는데요. “미국에 당분간 머물라”는 뜻이었죠. 그러나 하루 만에 백악관은 “신규 신청자에게만 적용되는 일회성 수수료”라며 한발 물러섰는데요. 상무장관은 ‘연간 수수료’라고 말했고 백악관 대변인은 ‘일회성’이라며 정정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죠. ‘미국 우선’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국가 안보’를 강조해 지지층을 달래면서도 투자 위축 우려가 커지자 현실적으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이터/연합뉴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을 밀어붙였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60만 명을 받아들이겠다”며 태도를 바꿨죠. 무역협상 카드를 쥐려는 계산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급작스러운 유턴은 다름 아닌 지지층의 반대 때문이었는데요. 마가(MAGA) 진영 인사들은 “중국 공산당 스파이를 들이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했죠. 마조리 테일러 그린 의원은 “60만 명이 미국 학생들의 기회를 빼앗는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보수 인플루언서들은 “추방과 입국 허용이 동시에 이뤄진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유학생이 없으면 대학 시스템이 무너진다”며 ‘대학 살리기’ 카드를 꺼내 들며 슬쩍 입장을 선회했죠.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4일(현지시간) 직원들이 체포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지막은 한국입니다. 8일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317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구금된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는데요. 미국 당국은 불법 비자 문제를 이유로 들었지만 ‘투자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엔 강경 단속을 지지했으나 곧바로 트루스소셜에 “외국 기업과 인력을 환영한다”고 썼죠. 특히 한국이 제안한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까지 언급하며 한국을 의식한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이민 정책과 경제 정책의 충돌에서 결국 경제가 이겼다”고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싱크탱크들은 “트럼프는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어 신뢰할 수 없다”고 경고했는데요. 한국 사회에 남은 인상 또한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였습니다. 해당 사태는 트럼프식 정책 결정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인 셈이죠.

트럼프 대통령의 이 오락가락 행보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구조적인 성격을 띄는데요. 먼저는 정치적 계산이다. 핵심 지지층인 마가(MAGA)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반이민·반언론 같은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거죠. 그러면서도 실제 경제·외교 현장에서 이런 정책이 미국 기업과 투자에 부메랑이 되자, 한발 물러서며 말을 바꾸는 건데요. 조지아 현대-LG 구금 사태, H-1B 비자 수수료 혼선이 대표적입니다. 또 쇼맨십도 있죠. ‘타이레놀-자폐’ 연관성, ‘방송사 면허 취소’ 같은 발언은 실행 가능성과 별개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가 됩니다.

결국, 트럼프식 ‘정책 유턴’은 강경 메시지와 현실적 제약을 오가는 패턴인데요. 정치적 효과는 얻을진 모르지만, 정책 신뢰성과 국제사회 신뢰는 갉아먹고 있죠. “트황이시여” 이제 그 별칭은 풍자가 아니라, 현실을 담은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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