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규모 커졌지만 미래 이끌 작가 감독 보이지 않아
"미학적, 서사적, 장르적 실험 모두 게을리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에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가운데 흥행 10위권 내에 진입한 한국영화는 '퇴마록'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등 단 두 편뿐이다. 애니메이션인 '퇴마록'을 제외하면 실사영화는 한 편 밖에 되지 않는다. 영화 자체의 참신성 부족을 비롯해 OTT 부상, 제한적인 상영 기회 등 여러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한국 독립영화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2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가운데 흥행 1위는 47억 원의 매출을 올린 국산 애니메이션 '퇴마록'이다. 전체관람가 등급의 어린이와 가족 대상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루는 국내 시장에서 12세이상관람가 등급인 '퇴마록'은 전체관람가 등급이 아닌 한국 애니메이션 중에서 역대 최고 흥행 기록 달성했다.
이어 '서브스턴스', '콘클라베', '플로우', '해피엔드'가 나란히 5위권 내에 진입했다. 모두 외국영화다. 반면 한국영화는 바이포엠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가 7위를 기록하며 10위권 내 유일한 실사영화로 이름을 올렸다.
김혜영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 수정곰상을 받는 등 유수의 영화제들로부터 초청받았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 속에서 삶의 희망과 행복을 노래하는 영화로 올 상반기 약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5년간 한국 독립‧예술영화 흥행작 1위를 살펴 보면, △2020년 '기기괴괴 성형수' △2021년 '더 박스' △2022년 '그대가 조국' △2023년 '문재인입니다' △2024년 '건국전쟁'으로 나타났다.
'기기괴괴 성형수'와 '더 박스'를 제외하면 최근 3년간 흥행 1위를 차지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모두 정치 관련 선전 영화였다. 이 같은 영화들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기준 한국 독립‧예술영화 총 매출액은 237억 원으로 최근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독립영화 제작 관계자는 "수치적으로는 시장 규모가 커졌지만, 흥행작들의 리스트를 보면 회의적"이라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 집단에만 호소하는 천편일률적인 선전 영화들이 흥행하는 것은 한국 독립영화 산업의 발전과 큰 상관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023년에 개봉한 이정홍 감독의 '괴인'이나 오정민 감독의 '장손' 등을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들이 전무하다"며 "홍상수나 봉준호, 장준환 등의 감독들이 내놨던 독창적인 데뷔작처럼 한국영화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작가들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위기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에 열린 각종 포럼에서도 제기됐다. '윤희에게' 등을 제작한 박두희 프로듀서는 "작금의 한국독립영화는 미학적, 서사적, 장르적 실험 모두 게을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똥파리'(2009), '파수꾼'(2011), '벌새'(2019) 등이 이룬 미학적 성취를 답습하는 데 머물고 있다. 이들 영화는 각각 가난으로 붕괴한 가족, 방황하는 청소년, 페미니즘 등의 주제를 내세웠는데, 지금까지도 비슷한 종류의 서사들이 반복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작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하마구치 류스케나 미야케 쇼, 소라 네오 등 젊은 영화감독들이 각자의 고유한 스타일이 새겨진 영화들을 내놓으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라며 "반면에 한국은 어딘가 기시감이 있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참신하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정부 예산안에 한국영화의 토대인 독립·예술영화의 관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상영 지원사업(18억 원)을 새롭게 편성했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상영 지원사업도 중요하지만, 괜찮은 독립영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며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작가들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등 작품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