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자원 배터리 화재', 재생에너지 확대에 찬물…ESS 안전성 도마 위 [종합]

UPS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22시간 만에 진화…대규모 확산 가능성 우려
사용연한 넘겼지만 교체 예산 지연…관리 부실 논란 확산
정부 “재생에너지 2035년 160GW 이상 확대”…ESS 수용성 확보 관건

▲화재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27일 소방대원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가 담긴 소화수조에 물을 뿌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태양광·풍력의 ‘간헐성’을 보완할 핵심 수단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꼽히지만, 이번 사고로 안전성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주민 수용성이 한층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용연한을 넘긴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 교체가 예산 지연으로 미뤄졌다는 지적 탓에 관리 부실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8시20분 대전 국정자원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 UPS용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돼 27일 오후 6시 완전 진화되기까지 약 22시간이 걸렸다. 소방당국은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다량의 물을 쏟아붓거나 수조에 담가 냉각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발화 지점으로 지목된 UPS 배터리는 2014년 설치돼 사용연한 10년을 1년 넘긴 상태였다. 노후 배터리는 내부 저항 증가와 열 축적 등으로 발화 위험이 커지는 만큼 교체가 필요했지만, 국정자원은 예산 사정을 이유로 교체를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이전 과정에서 작업 실수가 있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교체 시점을 놓친 채 연한을 넘긴 배터리를 계속 사용한 관리 부실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설비 노후화가 아닌 구조적 예산 문제의 결과라는 점도 주목된다. 국정자원은 매년 노후 전산장비와 인프라 교체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 등 예산 당국 심의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며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반복됐다. 정부 전산망 유지·보수 항목은 신규 개발사업보다 항상 뒷전으로 취급돼 왔다는 내부 비판도 있다.

▲화재가 발생한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27일 소방대원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소화수조로 옮기고 있다. (뉴시스)

한 정부 관계자는 “예산 배정이 늦어 장비 교체가 미뤄진 부분이 있었다”며 “그 여파가 이번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은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확대 전략에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날씨에 따라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ESS 확충을 계획하고 있지만,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 주민 수용성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ESS에는 대부분 리튬이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태양광 발전소 뒤에서 풍력 터빈이 돌아가고 있다. (랩샤겐(독일)/AP뉴시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23GW(기가와트) 규모의 장주기 ESS를 확보하고, 2029년까지 2.22GW를 우선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최근 재생에너지 설비 목표치를 상향하면서 ESS 확충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환경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최소 100GW, 2035년에는 최대 160GW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ESS 등 유연성 자원 확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학계도 같은 진단을 내놓고 있다. 고려대 연구진은 2036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4.4% 감축하려면 풍력 64.7GW, 태양광 72.3GW 등 총 137GW 이상을 확보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려면 ESS 용량을 현재(2023년 4.4GW)의 6배가 넘는 30GW로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태양광·풍력은 빛 반사, 소음, 경관 훼손 등으로도 지역 반발이 큰 상황에서, ESS 화재 위험까지 부각되면서 주민 수용성은 더 떨어질 수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ESS 화재는 55건 발생했고, 전체 배터리 화재는 2024년 한 해에만 543건에 달했다.

이번 사고로 ESS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경우, 정부가 제시한 재생에너지 확대 로드맵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ESS를 단순히 보급량 확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배터리 안전기준 고도화, 대체 저장기술 개발, 전력망 유연성 강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에너지 전환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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