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방문한 제주 서귀포시 시트러스 본사. 건물 정면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혼디酒(주)'라는 글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혼디는 시트러스의 가장 첫 '작품'이자 간판 제품이다. 통상 본사나 공장 건물에 사명이 새겨지는 것과 달리 시트러스는 제품명을 내세웠다. 혼디는 제주어로 '함께, 같이'라는 뜻이다. 신례리마을 140여 농가가 출자해 함께 이뤄낸 기업이자, 함께 하겠다는 기업 철학을 강조한 셈이다.
제주 서귀포시 신례리 마을은 연중 내내 감귤 농사를 짓는다. 황금빛 감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곳이다. 하지만 맛이 좋은데도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아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많은 감귤이 폐기됐다. 당시 신례마을 이장이었던 김공률 대표는 이렇게 버려지는 '파치'를 활용한 방법을 고민했고, 수차례의 시도 끝에 제주감귤 100%의 술을 빚었다. 2012년 농업법인으로 설린된 시트러스는 2014년 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대표는 김공률 당시 이장이 맡고 있다. 김 대표는 30년 간 감귤 재배만 해온 프로 농사꾼이다. 이후 진로 연구개발 이사 출신으로 한 때 진로 주요 제품의 개발ㆍ생산을 맡았던 주류업계 산증인 이용익 공장장이 합류했다. 현재 시트러스 전 제품의 공정은 이 공장장이 맡는다.
시트러스는 감귤로 제주의 특별한 맛을 내보겠다는 의지로 출발했지만 설립 초기 경영은 쉽지 않았다. 이름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만들 술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는 많지 않았다. 시트러스는 2018년까지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통주 제조업에 대한 조세 감면 혜택을 통해 가격을 낮추고, 여기에 SNS를 통해 젊은층 사이에서 입소문이 더해져 2019년부턴 흑자로 돌아섰다. 2015년 첫 제품인 혼디주를 시작으로 신례명주(2016년), 마셔블랑(2018년), 미상25(2020년), 마셔블랑 스프링(2023년) 등이 잇따라 출시됐다.

시트러스는 연간 약 63톤의 비상품 감귤을 소비한다. 11~2월 수매를 시작으로 착즙→발효→여과를 거치면 혼디주와 마셔블랑이 만들어진다. 발효→증류→숙성을 거치면 미상25, 발효→증류→오크통 숙성을 거치면 신례명주가 제조된다.
미상25는 감귤 발효 원액을 2번 증류해 저온 숙성한 술이다. 특히 신례명주는 전세계에서 찾기 힘든 프리미엄 제주감귤 증류주라고 회사 측은 자평한다. 실제 2023년 세계 3대 주류품평회인 벨기에 몽드셀렉션에서 신례명주가 금상, 미상25가 은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서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
현재 시트러스는 월 20만 병의 술을 생산할 수 있는 대규모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 공장장이 안내한 지하 숙성실에는 감귤 와인을 증류한 원액이 보관돼 있다. 15도로 유지되는 숙성실에 125통의 오크통이 저장돼 있다. 모두 유럽과 미국에서 건너온 오크통이다. 신례명주는 이 곳에서 1년의 숙성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이 공장장은 "단순 매출로 환산하면 오크통 1개 당 약 3000만 원의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들쭉날쭉한 날씨로 감귤의 상품성이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해 작황이 좋을 때 만든 원액을 섞어 같은 품질의 맛을 유지한다. 이 공장장은 "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료다. 원료가 (술의 맛과 품질의) 80%를 차지한다"며 "품종 개량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트러스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융복합산업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지역농산물 활용과 제품 경쟁력, 성장 가능성,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시트러스는 세계 무대로 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 연구개발에 더 공을 들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