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규제·자금 한계에 몸집 불리기 제약
“AI·반도체 중심 과감한 승부수 필요” 지적

글로벌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은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과감한 ‘빅딜’을 통해 시장 주도권을 쥐는 사이,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규제와 제약 속에서 소극적이고, 신중한 행보를 보인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제는 과감한 빅딜 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대형 M&A 빅딜을 통해 몸집을 크게 부풀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다. MS는 2023년 10월 690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완료했다. 해당 거래는 MS 창립 50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로 꼽히며 주목받았다. 해당 빅딜로 MS는 콜오브듀티, 크래쉬밴디쿳,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등의 방대한 비디오게임 프랜차이즈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됐다.
브로드컴 역시 같은 해 11월 클라우드·가상화 소프트웨어 회사 ‘VM웨어’를 약 610억 달러에 인수해 클라우드·데이터센터 경쟁력을 강화했다. 엔비디아 역시 ARM 인수를 시도하며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하려 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압도적 자본력과 규제 유연성을 무기로, 단기간에 기술과 시장 지형을 뒤바꾸는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거물급의 기업 인수 사례가 드물다. 또 지분 인수 형태의 소규모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독일 냉난방공조(HVAC) 기업 ‘플랙트’ △미국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 △미국 디지털 헬스 플랫폼 기업 ‘젤스’ 등 세 곳을 인수했다. 다만 세 기업 합산 인수 금액은 약 3조 원 미만으로 알려졌다.
플랙트의 경우 15억 유로(약 2조4000억 원)로, 2017년 전장 기업 ‘하만’(9조3400억 원) 인수 이후 8년 만에 최대 규모로 주목받았지만, 한 기업을 인수하는 데 수십조 원을 투자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빅딜 부진을 구조적 한계에서 찾는다. 금리 인상과 금융 시장 불확실성으로 금융 조달이 어렵고, 글로벌 대형 기업들 대비 현금 유보 규모가 작아 대규모 M&A에 필요한 자금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 등 규제 장벽이 높아 사전심사 의무와 복잡한 절차가 거래 지연·불확실성을 확대하고 있고, 오너 중심 구조와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 공격적 M&A보다는 신중한 투자에 치중한다는 점도 문제다.
다만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신중한 몸집 불리기를 넘어 과감한 승부수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AI, 반도체, 바이오 등 성장산업 중심 M&A를 통해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단순히 회사를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문화 통합·기술 융합 등을 통한 시너지 창출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유보 현금이 부족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모펀드(PEF)·성장자본·해외 투자자와의 공동 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사전 리스크 관리와 규제 친화적 구조 설계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