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M&A 방정식, ‘빅딜’ 없인 미래 없다 [M&A 전장, 韓기업 생존 공식上]

MS·브로드컴·AMD '메가딜' 통해
게임·반도체·클라우드 생태계 재편
단순 사업 확장 넘어 지배력 강화
韓, 스타트업 등 소규모 투자 집중
“AI 밸류체인 경쟁서 뒤처질 수도”

한국 기업의 인수합병(M&A)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기업들은 해외 시장 거점 확보나 특정 기술 보강을 위해 수백 억~수천 억 원 규모의 중소형 거래에 주로 의존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인공지능(AI)·반도체·배터리·에너지 전환 등 미래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통 큰 한 방’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4일 삼일PwC 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M&A 건수는 전년 대비 18% 줄었지만, 거래 금액은 5% 늘었다. 특히 10억 달러 이상 대형 거래는 17% 증가해 시장 흐름을 주도했다. 같은 기간 국내 시장도 거래 건수는 2% 감소했지만, 거래 금액은 30% 증가했다. 다만 국내 시장은 SK그룹의 구조조정형 빅딜이 중심이었다는 점에서 글로벌 메가딜 트렌드와는 차이를 보였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에너지 사업 재편 과정에서 계열사 합병을 단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메가딜은 산업 판도를 단숨에 바꾼다. 마이크로소프트(MS), 브로드컴, AMD는 각각 액티비전 블리자드, VM웨어, 자일링스를 수백 억 달러 규모로 인수하며 게임·클라우드·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했다.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생태계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승부수였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여전히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80억 달러),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90억 달러) 같은 빅딜 사례가 있지만, 글로벌 메가딜과 비교하면 체급 차는 뚜렷하다.현대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역시 1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M&A는 스타트업 지분 투자나 계열사 내 합병이 대부분이다. 네이버는 콘텐츠·AI 역량 강화를 위해 왓패드, 왈라팝 등을 인수했고, 카카오는 웹툰·엔터테인먼트 기업 지분을 확대하며 플랫폼 경쟁력을 넓혔다. 삼성과 LG 등 대기업도 주로 로봇·AI·바이오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소규모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AI 확산에 따른 투자 슈퍼 사이클이 본격화됐다고 진단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대형 인수·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클라우드 역량 강화를 위해 보안·데이터 전문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글로벌 사모펀드(PE) 자금도 AI와 맞닿은 IT 서비스·사이버보안·로보틱스 기업으로 몰리는 중이다. 고금리와 규제에도 불구하고 AI 관련 밸류체인 투자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향후 5년간 데이터센터 구축·운영에 최대 2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자본이 투입될 것”이라며 “AI 중심 밸류체인 기업 인수가 새로운 M&A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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