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기업 이미지, 더 나아가 한국 재계의 신뢰도와 직결된다. 반대로 오너의 사법 리스크나 사생활 논란은 그룹 전체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이며 기업가치를 훼손한다. 한국 재계가 오너 리스크라는 숙명을 안고 있는 이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의 사례는 리더십 상징성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는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자원 입대하여 임관 후 아덴만 파병 등을 경험했고 군 복무 중 일부 동료의 정신건강 문제와 극단적 선택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이 경험이 그녀를 정신건강 헬스케어 스타트업 ‘인테그랄 헬스’ 창업으로 이끌었다. 취약계층 접근성 격차 해소, 인공지능(AI) 케어 코디네이터 ‘나이팅게일’ 도입 등으로 공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런 개인적 트라우마가 사회적 책임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오너의 상징성과 리더십이 단지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경험과 가치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 회장은 최근 각종 국제 포럼에서 한국 재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단순히 기업 총수의 위치를 넘어 ‘기업 외교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AI 등 전 세계를 관통하는 의제는 더 이상 정부만의 역할이 아니다. 한국 기업 오너들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 발언하고, 글로벌 룰 메이킹 과정에 참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한국 재계가 ‘국내용 플레이어’에서 ‘글로벌 협상 당사자’로 격상됐음을 뜻한다. 결국 오너의 태도와 언행은 특정 그룹을 넘어 한국 기업 전체의 브랜드로 확장된다. 오너의 리더십은 한국 경제의 신뢰 자본이자 위험 요소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오너 경영은 오래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와 충돌해왔다. 투명성 부족, 세습 논란, 전횡 가능성 등 비판은 여전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너십은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구조적 장점도 있다. 문제는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자들은 단순한 수익성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주의 깊게 본다. 한국 대기업들이 ESG 경영을 앞세워 사외이사 확대,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너 리스크가 불거지더라도 독립된 이사회와 감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는 오히려 “시스템으로 리스크를 흡수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또한 리스크는 때로 기업 문화와 오너십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위기 속에서 오너가 보여주는 책임 있는 태도, 투명한 의사소통,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구축 노력은 리스크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결국 오너 리스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회적 책임으로 승화시키느냐가 기업가치를 결정한다.
한국 재계는 여전히 오너를 얼굴로 삼는다. 글로벌 무대에서 오너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특정 기업의 평판을 넘어 한국 기업 전체의 신뢰도를 좌우한다. 오너 리스크는 숙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리스크는 곧 자산으로 바뀐다. 한국 재계가 세계와 맞서야 하는 지금, 오너 리더십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