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검찰개혁, 제도 설계 넘어 신뢰로 가야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믿고 맡기되 의심하지 않는다. 군주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신하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임금이 지켜야 할 덕목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군왕을 둘러싸고 당쟁이 사화로 비화하면서 신하들의 ‘입김’이 강했고, 왕은 그들을 달래가며 나라를 이끌어야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하지만 이 같은 덕목은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성군들도 지켰다고 하니 정무적 감각을 발휘한 훌륭한 ‘용인술’이자 그만큼 군신 간에 신뢰가 두터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철칙은 오늘날 국가나 기업 운영에도 그대로 통한다. 위임과 신뢰가 없는 조직은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구글은 창업 초기부터 ‘관리자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고, 각 팀이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넷플릭스 역시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며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결과로 성과를 평가한다. 두 기업은 공통적으로 ‘마이크로 매니징’을 조직 실패의 지름길로 간주한다. 맡겼다면 믿어야 하고, 믿었으면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긴 셈이다.

정부·여당이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확정하면서 검찰개혁의 얼개가 나왔다.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하는 구상도 추진 중이다. 지나치게 집중된 검찰의 권한을 분산하겠다는 취지다. 1948년 7월 설립된 검찰청이 77년 만에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검찰개혁이라는 숙원 과제를 추진하는 입장에선 믿을 수 없으니 맡길 수 없고, 맡겨도 의심하고 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없지 않았을 터.

그도 그럴 것이 검찰은 그동안 ‘검찰의 나라’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면서 정권 입맛에 맞춘 ‘과잉(또는 축소) 수사’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스폰서 검사’와 같은 스캔들이 반복됐고, ‘라임 술접대 의혹’에선 기적에 가까운 계산법을 시전해 여러 사람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내부적으로는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으로 새내기 검사가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압수한 관봉권 띠지를 훼손·분실하고 뒤늦게야 이를 인지하고도 은폐하려 한 의혹을 사고 있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안은 예상된 결과임에도 검찰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적잖은 당혹감이 엿보인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8일 출근길에 “헌법에 명시돼 있는 검찰이 법률에 의해 개명 당할 위기에 놓였다”며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 검찰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해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검찰개혁의 세부 방향과 관련해선 “국민의 입장에서 설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면서 보완수사권 존폐 논란에 대해선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검찰도 입장을 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조직 내부의 동요를 의식해 여지를 남긴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개혁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다.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민 신뢰라는 차원에서 다뤄야 할 과제다. ‘검찰청 폐지’라는 타이틀 아래 검찰개혁의 밑그림이 나왔지만 보완수사권 존폐,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여부 등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또다른 ‘괴물 수사기관’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결국 검찰개혁은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추진하느냐가 성공 여부를 가를 것이다. 제도 설계를 넘어 국민 신뢰를 얻는 것은 전제조건이다. 믿고 맡길 수 있고, 이왕 맡겼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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