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덤핑' 전문성·네트워크…대형 로펌이 탐내는 이유
'세금으로 키운 전문가' 유출⋯이해충돌 방지 장치 필요
반덤핑 등 불공정무역 행위를 조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가 대형 로펌으로 가는 '취업 명당'으로 부상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 무역위 계약직 공무원들이 2~5년의 실무 경험을 쌓으면 높은 연봉을 받고 로펌에 스카우트되는 '엘리트 코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2일 정부부처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러한 엘리트 코스의 대표적인 사례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모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산업부 통상법무기획과(2018~2021년)를 거쳐 무역위 산업피해조사과에서 행정사무관으로 2023년까지 근무한 후 곧바로 대형 로펌인 태평양에 합류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정모 변호사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덤핑방지관세,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정 변호사는 2002~2006년 무역위 조사관으로 근무한 후 다른 로펌을 거쳐 2014년에 법무법인 화우로 이직했다.
법무법인 광장에도 무역위 출신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조모 미국 변호사는 행정고시 출신(37회)으로 과거 무역위 과장을 역임한 통상 전문가다. 2011년부터 광장에 합류해 통상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변호사 출신은 아니지만 한모 전 산업부 차관 역시 퇴임 후 광장의 고문으로 영입돼 국제통상 및 에너지·자원 분야의 기업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의 연봉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역위는 덤핑,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무역 행위와 그로 인한 산업 피해를 조사·판정하는 준사법적 기관이다. 이곳에서 공무원들은 복잡한 국제 통상 법규와 실물 경제가 얽힌 사건을 다루며 고도의 전문성을 쌓게 된다. 특히 반덤핑 조사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최전선 업무로, 관련 법률 자문 수요가 높은 대형 로펌들이 가장 탐내는 경력으로 꼽힌다.
법조계 관계자는 "무역위에서의 경험은 국제 통상 및 관세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다수의 전문가들이 국내 대형로펌에 합류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형 로펌들은 무역위 근무를 통해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위해 억대의 높은 연봉과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인재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다. 이것이 변호사들이 무역위 임기제 공무원 채용에 몰리는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현재 산업부는 무역위에서 근무할 임기제(최소 2년) 행정사무관과 행정주사보 채용을 진행 중이며, 두 직책 모두 변호사 자격증 소지를 우대 조건으로 명시했다. 산업부는 채용 경쟁률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관가 내부에서는 무역위의 전문성과 희소성을 고려할 때 경쟁률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유사한 정부 부처의 변호사 채용 사례를 보면, 적게는 수십 대 일에서 많게는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무역위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창기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는 "근무기간이 정해진 임기제 공무원의 이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세금으로 키운 전문가 유출, 기관 자체의 전문성 축적을 저해할 수 있는 문제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재직 시절 구축한 네트워크와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퇴직 후 일정 기간 소속 기관 관련 업무를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이해충돌을 방지할 제도적 통제 장치를 마련해 공공성 훼손 우려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