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오년소계(五年小計)' 전락한 교육정책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다.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으로 교육이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며 ‘오년소계(五年小計)’로 전락했다. 최근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이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미래 교육의 핵심 도구로 내세웠다. 학생의 수준과 속도에 맞춘 맞춤형 학습, 교육 격차 완화, 교사의 행정 부담 경감, 사교육 의존 축소 등이 강조됐다. 이를 위해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고 교과서 발행사를 비롯한 수많은 기업이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자 국회는 교과서 지위를 박탈했고, 정책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AI 교육의 필요성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AI 역량은 곧 미래 인재의 경쟁력이다. 세계 각국이 AI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학습 기회를, 교사에게는 수업 혁신의 도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책의 연속성 부재로 학생과 교사, 나아가 산업계가 모두 피해를 보게 됐다.

물론 도입 과정의 우려도 존재했다. 교사 연수가 충분하지 않았고, 현장의 준비도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부모들은 개인정보 유출과 디지털 기기 과다 사용 등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준비가 미흡했다면 속도를 늦추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했다. 폐기를 택한 것은 미래 세대의 학습권을 앗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피해는 학생에 그치지 않는다. 교과서 발행사와 협력업체, 수많은 연구개발 인력이 사업 축소와 구조조정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권장해 시작한 혁신 사업이 정권 교체와 함께 무산되자 업계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다. 정부가 장려한 사업이 정권 교체와 함께 폐기된다면 어느 기업이 다시 교육 혁신에 선뜻 뛰어들겠는가. 이는 교육정책을 넘어 산업 생태계 신뢰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정책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정책만큼은 정권에 따라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섣부르게 추진됐다면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했다. 정책의 방향은 폐기가 아니라 ‘어떻게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도입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여야 한다. 지금처럼 오년소계로 흔들린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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