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외쳤던 한 광고가 있었다.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과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곧 신뢰를 구축하는 중요한 가치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이러한 ‘소신’은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덕목이 됐다. 특히 시장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는 ‘낙관적 편향’이라는 해묵은 병폐에 시달리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가 ‘매수’ 일색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된 국내 애널리스트 보고서 중 매도 의견을 담은 비중은 0.1%에 불과했다. 리포트 1000건 중 단 1개만 ‘팔라’고 조언한 셈이다. 반면, 매수와 ‘적극 매수’ 의견은 전체의 92.9%에 달해 압도적인 쏠림 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매수 편향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00년대 67% 수준이었던 매수 의견 비중은 2010년대 89%로 치솟았고, 2020년대에는 90% 초반대로 굳어지며 투자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금융 당국도 이러한 관행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15년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를 도입했다. 증권사가 상장주식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 ‘중립’(보유), 매도로 구분해 그 비율을 공시하도록 한 것으로, 시장의 자율적인 개선을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상태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도 매도 의견 비중은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고, 오히려 매수 쏠림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는 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당국의 경고와 권고만으로는 수십 년간 굳어진 시장의 관행을 바꾸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증권사들은 나름의 노력도 기울였다고 항변한다. 일례로 한화투자증권은 2014년 매도 리포트 비중을 10%까지 의무화하는 과감한 정책을 시도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로선 파격적인 실험으로 평가받았지만, 2년여 만에 폐지됐다. 시장의 저항과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소신 있는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이 사례는 자율적인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국내 증권사의 매수 일색 리포트 원인은 복합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고질적인 이해상충 문제를 꼽는다.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직원으로서 투자은행(IB) 업무 등 다른 부서의 수익 창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매도 보고서를 내면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 등 IB 업무의 잠재적 고객이 될 수 있는 상장사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애널리스트에 대한 보상이 기관투자자 대상 중개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된 현실도 객관적인 의견을 내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기업들의 직접적인 압력과 보복 가능성도 제기된다. 매도 보고서를 낸 애널리스트는 해당 기업으로부터 자료 제공을 거부당하거나 탐방에서 배제되는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는 결국 정확한 정보 분석을 통해 투자자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리서치 본연의 역할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매도 의견이 실종된 리포트는 투자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 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투자자들이 스스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가의 편향된 시각은 투자 실패의 위험을 높인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10~20%대의 매도 의견 비중을 꾸준히 유지하며 시장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증권업계의 현주소는 매우 안타깝다.
기존의 제도를 재검토하고, 애널리스트들이 외부의 압력 없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건강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신’을 버린 리서치 보고서는 그 존재 의미마저 잃게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