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세계를 주름잡는 스타들의 무대는 공연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화보 속 스타일링으로 눈길을 끌고, 파파라치 컷을 통해 유행에 불을 붙이는 건 기본이고요. 각종 브랜드, 기업과 컬래버레이션으로 활동 영역을 넓힙니다. 여기서 나아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브랜드를 직접 설립하면서 눈길을 끌죠.
특히 시선을 모으는 건 힙합 스타들의 활발한 출사표입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독보적인 음악적 스타일과 힙한 멋을 패션으로 풀어내며 사업가로 변신하고 있는데요. 사실 힙합과 사업가라는 정체성은 꽤 잘 맞아떨어지기도 합니다. 래퍼들의 자수성가 서사부터 플렉스(flex) 문화와도 맞물리죠. '사업 제국'을 세운 제이지부터 스니커즈 리셀 열풍을 이끈 예(Ye·칸예)만 떠올려 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여기에 최근 포스트 말론도 사업에 뛰어들어 시선을 모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겁니다.

포스트 말론은 자신의 본명 '오스틴 리차드 포스트(Austin Richard Post)'를 딴 브랜드 '오스틴 포스트'를 론칭합니다.
다음 달 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런웨이를 통해 첫 번째 컬렉션 '시즌 원(Season One)'을 공개할 예정인데요. 일부 패션 관계자들에게 초대장이 전달되며 런웨이 준비 사실이 드러났고, 파리 패션위크 직전이라는 상징적인 타이밍까지 겹치며 업계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클래식 셔츠, 화려한 슈트, 자수 블레이저 등 포스트 말론의 취향이 반영된 아이템으로 구성됐다고 합니다. 웨스턴 스타일과 스트리트웨어, 힙합적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은 마치 그의 음악처럼 장르와 분위기를 자유롭게 오가는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줄 전망인데요. 무대를 넘어선 그의 또 다른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패션으로 구현될지 관심이 높아집니다.
포스트 말론의 패션 관련 행보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앞서 크록스와의 풋웨어 협업으로 한정판 제품을 완판시킨 데 이어 전 세계 Z세대의 텀블러로 사랑받은 스탠리 1913과도 협업하며 틈틈이 존재감을 드러냈죠. 최근에는 킴 카다시안의 속옷 브랜드 스킴스(SKIMS) 맨즈 라인 얼굴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는데요. 카우보이 햇, 카모플라주 패턴 속에서 그만의 웨스턴 감성을 드러낸 화보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본인도 직접 "나는 늘 편안함과 즐거움을 추구한다. 특히 카모플라주 아이템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브랜드 아이덴티티와의 접점을 강조했죠.
이번엔 협업이나 모델을 넘어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방향성을 총괄해 관심을 높이는데요. 특히 노을을 배경으로 한 런웨이는 파리 패션위크 직전 같은 도시에서 개최돼 글로벌 패션 신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최적의 무대입니다. 여기에 다음 달 3일 열리는 파리 라 데팡스 아레나 공연과 일정이 맞물리면서 음악과 패션을 동시에 아우르는 '포스트 말론식 유럽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힙합 신의 스타들은 음악 무대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힙합 대부 제이지는 일찌감치 로카웨어(Rocawear)라는 패션 브랜드를 직접 세운 바 있고요. 엔터테인먼트 기업 락네이션을 통해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까지 손을 뻗었습니다. 샴페인 브랜드나 음원 플랫폼을 인수하는 등 패션을 넘어 주류·테크·라이프 스타일까지 아우른 인물인데요.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사업가로서 힙합의 '자수성가 서사'를 대표해온 상징적 인물로 거론됩니다.
칸예도 빠질 수 없죠. 2013년 론칭한 이지(YEEZY)는 아디다스와 협업한 '이지 부스트' 시리즈로 글로벌 패션 시장을 흔든 대표 사례인데요. 최근 각종 기행으로 아디다스와 결별한 후에는 독립 브랜드로서 리브랜딩을 추진, 밈 코인 '이지(YZY) 토큰'을 실험하는 등 패션과 기술을 넘나들며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 패션 업계를 대표하는 래퍼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존재감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죠.
드레이크는 2008년 OVO(October’s Very Own)를 설립, 음악과 스트리트 웨어를 결합했습니다. OVO는 단순히 의류 브랜드에 그치지 않고 음반 레이블(OVO 사운드), 음악 페스티벌(Ovo 페스트) 프라이빗 클럽까지 연결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제국으로 거듭났는데요. 위스키 브랜드 협업 등 끊임없이 사업 스펙트럼을 넓힌 그는 패션을 자기 세계관을 구축하는 중요한 축으로 삼았습니다.
에이셉 라키(A$AP Rocky)도 'AWGE'라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를 설립해 패션, 음악, 디지털 콘텐츠를 총괄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운영 중입니다. 구찌·디올·페라가모 등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하며 직접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로 보폭을 넓히며 힙한 아이콘으로 거듭났죠.
이들 사례는 단순히 옷을 팔기 위한 행보는 아닙니다. 힙합 특유의 자수성가 서사, 플렉스 문화가 결합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내가 만든다"는 철학을 가감 없이 자랑하는데요. 무대 위에서 랩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듯 패션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사업화하는 겁니다. 이에 힙합 스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브랜드 오너로 나서는 모습은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장르 본질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곤 하죠.

물론 힙합 신 외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포착됩니다. 리한나(리아나)는 펜티 뷰티(Fenty Beauty) 성장을 이끌면서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 잡았고, 저스틴 비버는 드류 하우스(Drew House)를 거쳐 지난달 스카일러크(Skylrk)를 공식 론칭했습니다. 첫 컬렉션에는 톡톡 튀는 색감의 의류부터 선글라스, 신발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구성됐는데요. 그간 저스틴 비버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스포일러 해온 제품들도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죠. 팝스타들의 음악과 사업을 넘나드는 행보는 이제 자연스러운 루틴처럼 여겨집니다.
한국에서도 스타들이 직접 패션·뷰티 브랜드를 세운 사례는 있습니다. 지드래곤은 패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PEACEMINUSONE)을 론칭, 드롭(drop) 방식으로 모든 제품을 기습 발매하는데요. 전 제품이 언제나 품절을 기록, 웃돈이 붙어 재거래 됩니다. 가수 전소미는 뷰티 브랜드 글맆(GLYF)을 세우고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죠. 그는 최근 두 번째 EP '카오틱 & 컨퓨즈드(Chaotic & Confused)' 발매 기념 인터뷰에서 " 글맆과 가수, 서로의 일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제가 더 힘들더라도 일을 분리해서 하고 싶었다"며 각각의 분야에 충실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시도는 아직 드문 사례입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획사 중심 구조가 강해 아티스트 개인이 브랜드를 직접 설립하고 총괄하는 데에는 여러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는데요. 특히 자본과 네트워크, 유통망이 뒷받침돼야 하는 패션·뷰티 사업 특성상, 아이돌 개인이 나서기에는 리스크가 작지 않습니다. 브랜드를 론칭하더라도 꾸준히 주목받기도 쉽지 않죠.
대신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거나 협업 라인에 참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요. 실제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K팝 스타들의 활동은 브랜드 모델과 앰배서더 역할입니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샤넬, 디올, 생로랑 등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와 긴밀히 협업해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요.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등도 각각 명품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으며 '아이돌 = 패션 아이콘'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K팝 팬덤 특유의 소비문화와도 맞닿아 있죠.
자신의 브랜드를 설립하거나 특정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것.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음악과 패션을 넘나드는 스타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맥락을 형성하는데요. 오늘날 음악과 패션은 더 이상 분리된 무대가 아닙니다. 힙합 스타든 K팝 아이돌이든, 무대 위에서 쌓은 정체성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는 요즘, 패션 역시 아티스트를 표현하는 한 가지 언어인 셈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