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이제 외교의 시간

외교는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 중 하나다. 특히나 트럼프라는 막강한 변수와 마주해야 하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더욱 그렇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를 의식한 듯 이번 한 주를 정상회담 준비에 집중하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국정을 외교 모드로 전환했다. 순방 준비 과정에서 경제단체와 기업인을 잇달아 만나 우리 기업의 투자·구매 계획과 애로사항을 직접 챙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본판에 오르기 전, 외교 무대에서 활용할 카드들을 세밀하게 정리하는 모습이다.

서두에 언급했듯 관건은 트럼프다. 그는 전통적 외교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정상회담을 거래의 장으로 여기며 “좋은 딜(great deal)”에만 관심을 둔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판을 흔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그랬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즉흥성은 회담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준비된 시나리오보다 그의 직감과 기분이 협상의 향방을 좌우한다. 트럼프와 좋은 호흡을 보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무례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솔직해서 오히려 상대하기 편했다”고 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이 “오바마도 못한 일을 했다”며 치켜세우자, 트럼프는 기분이 풀려 농담까지 건넸다. 상대가 자신을 존중한다고 느끼는 순간, 트럼프는 돌변했다.

이러한 기류는 실질적 성과로도 이어졌다 . 트럼프 1기 당시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연 50억 달러라는 터무니없는 청구서를 받았지만, 결국 1조 원 조금 넘는 선에서 막아낼 수 있다. 트럼프의 쇼맨십을 이해하고, 그가 원하는 장면을 연출해준 결과였다. 외교가 단순한 힘겨루기를 넘어, 상대의 심리와 성향을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다행히 이 대통령에게는 트럼프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직설적이고 대중 친화적이다. 정치권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기성 정치와 차별화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진다.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를 전면에 내세운 지도자라는 점은 협상 테이블에서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외쳤다면, 이 대통령은 “민생 회복”을 기치로 삼았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뿌리는 같다.

물론 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트럼프 진영 일부가 이 대통령을 ‘친중 성향’으로 의심하는 것이 부담이다. 방위비, 주한미군, 동맹 현대화까지 ‘3종 세트 청구서’를 이미 준비한 미국이 한국의 선택을 재촉할 가능성도 크다. 한국이 모호한 태도로 버틸 수 있는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외교에서 당당함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허세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 인식이다. 지도자라면 누구나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필요하다면 가랑이 밑도 기어갈 수 있다”는 각오가 그래서 더 뼈아프게 와닿는다.

이제 외교의 시간이 왔다. 국내 정치에서 승부사로 자리매김한 이재명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도 같은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까. 트럼프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상대로 한 이번 회담은 분명 쉽지 않은 시험대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국익을 지켜내는 실용주의자의 외교, 그 첫 성적표가 어떤 모습일지 주목된다. 지금만큼은, 이 대통령이 그 무게를 감당해낼 것이라는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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