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트럼프가 실현한 덩샤오핑의 꿈

국제경제부 배준호 부장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덩샤오핑은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 이 짧은 문장은 희토류를 국가 전략자산으로 삼아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중국의 의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로 희토류에 대한 덩샤오핑의 염원이 실현됐음을 보여줬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겉으로는 강경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의외의 온도 차가 드러난다.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는 고율 관세를 가차 없이 부과하면서도 중국에는 관세휴전을 연장하거나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의 대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등 전략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가 중국에 맥을 못 추는 배경에 바로 희토류라는 민감한 사안이 있다.

중국은 매장량과 정제 능력을 무기로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장악해왔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60%, 정제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첨단산업과 국방 분야의 ‘산소’라 불리는 이 자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영유권 갈등 때는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며 ‘자원 무기화’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했다.

올해 진행된 미·중 무역 협상에서도 희토류는 중요한 협상 카드였다. 6월 영국 런던 회담에서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를 주무기로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제품 수출통제 일부를 해제하는 성과를 올렸다. 희토류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포드 등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기세등등했던 트럼프가 꼬리를 내린 것이다. 한 마디로 덩샤오핑이 그린 ‘희토류 패권’의 청사진이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셈이다.

희토류는 전기차와 반도체, 미사일 등 현대 첨단기술 제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핵심 원자재다. 중국이 1970년대 오일쇼크를 일으켰던 석유 카르텔처럼 이런 희토류 부문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거머쥐게 됐다.

사실 중국이 본격적으로 희토류 산업에 뛰어들기 전인 1950~1980년대는 미국이 세계 1위 희토류 생산국이었다. 한때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극심한 환경오염 부담에 희토류 산업을 아예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응은 미진하기 짝이 없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는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총 527억 달러(약 73조 원)를 지원하고 있다.

반면 희토류와 같은 전략자원 부문에는 쥐꼬리만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 국방부가 지난달 자국 유일의 희토류 채굴업체인 MP머티리얼스 지분 15%를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됐을 당시 투입한 돈은 4억 달러에 불과했다. 아무리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려고 해도 희토류로 이리저리 중국에 끌려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상황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산업 구조상 중국의 공급 제약은 곧바로 전기차·반도체·방산 분야의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해외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국내 정제·재활용 기술을 육성해야 한다. 희토류는 특정 산업의 원자재를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자원이다. 대비가 늦어지면 우리 역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로 살려야 한다. 희토류는 채굴보다 정제가 훨씬 어려운데 한국은 이미 배터리·반도체용 고순도 금속 정제 기술이 있어 이를 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또 희토류 대체기술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조선업은 물론 희토류 산업도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면 그만큼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입지도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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