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브랫 서머(Brat Summer)'의 주인공, 찰리 XCX가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최근 온라인상에는 영국 팝스타 찰리 XCX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은 모습이 확산했는데요. 찰리 XCX는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이 주관하고 자동차 문화 브랜드 피치스(Peaches.)가 주최하는 '원 유니버스 페스티벌 2025(이하 OUF 2025)' 헤드라이너로 설 예정입니다. 15~16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인근에서 열리는 'OUF 2025'에는 찰리 푸스, 씨엘, 빈지노, 비비, 한요한, 올데이 프로젝트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합니다.
그중에서도 찰리 XCX를 향한 기대가 뜨겁습니다. 지난해를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인 그는 2017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출연 이후 약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팬들의 함성을 드높일 예정인데요. 찰리 XCX의 음악과 애티튜드가 눈길을 끌면서 음악은 물론 패션·뷰티 업계도 이를 재빠르게 흡수, 하나의 트렌드를 굳힌 바 있습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클린 걸(Clean girl)과는 정반대 매력을 자랑하는 메시 걸(Messy Girl) 스타일이죠.

지난해 여름, 전 세계가 라임 그린 컬러로 물들었습니다. 6월 찰리 XCX가 6월 발표한 정규 6집 '브랫(Brat)'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건데요. 앨범 커버만 보면 "이게 뭐야?"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쨍한 연두색 바탕에 평범한 저해상도 폰트로 앨범명만 '띡' 박아놨기 때문이죠.
'브랫'엔 버릇없는 녀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찰리 XCX의 무대를 보면 이를 앨범명으로 정한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는데요. 풀어헤친 긴 머리, 번진 듯한 스모키 메이크업, 아무렇게 걸친 구겨진 티셔츠, 볼드한 레이어드 벨트, 신체를 과감히 드러낸 언더웨어 스타일과 낡은 스니커즈까지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어젯밤 파티에서 밤을 샌 소녀' 같은 모습이죠. 여기에 실험적인 클럽 음악과 트렌디한 2000년대 팝을 절묘하게 섞은, 악동 같은 음악을 자랑하는 그입니다.
찰리 XCX의 반항기 가득한 이 앨범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요 음악 차트를 휩쓸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중독적인 챌린지와 밈이 잇따랐고요. 지난해 '그래미 어워즈' 3관왕, '브릿지 어워즈' 5관왕을 기록했죠. 하이퍼 팝, 언더그라운드를 오가던 그는 이 앨범으로 메인 스트림을 장악, '브랫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등 대형 무대, 트로이 시반과의 합동 월드투어에서 보여준 강렬한 퍼포먼스, 애티튜드는 음악계뿐 아니라 패션, 뷰티 업계까지 흔들어놨죠.
그 중심에 있는 게 메시 걸 무드입니다. 겉보기엔 무심하지만 의도된 무질서인데요. 완벽하게 준비한 클린 걸의 반대편에서 결점도 스타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찰리 XCX는 더욱 힙해졌습니다.
롤링스톤은 '브랫'을 지난해 최고의 앨범 1위로 선정, "2024년은 그야말로 '브랫'의 해였다"며 "찰리 XCX는 댄스 플로어에서 빙글빙글 돌면서도 내면의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다. 파티 다음 날 아침 찾아오는 허무함 속에서나 느낄 법한 불안과 두려움까지 깊숙이 파고든 앨범"이라고 평가했는데요. 이어 "'토성의 귀환(서른 안팎으로 찾아오는 전환점)'을 막 지난 서른 초반의 불안, 잇걸(It-girl) 특유의 자신감, 그리고 하이퍼 팝의 롤러코스터를 오가는 동시에, 보너스 트랙과 리믹스 앨범으로 끊임없이 확장·진화하는 프로젝트"라고 부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브랫'은 단순한 음악 프로젝트를 넘어 불완전함의 미학과 자기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사회문화적 아이콘으로까지 자리 잡았는데요. 그 여파는 런웨이와 매장, 그리고 SNS 피드 속까지 번졌습니다.
메시 걸은 한마디로 의도된 무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무심하게 묶이거나 흘러내리고, 블랙 아이라이너는 일부러 번진 듯 칠해져 있습니다. 구겨진 티셔츠, 낡은 스니커즈, 네온이나 빈티지 패턴이 뒤섞인 아이템을 아무렇게나 걸친 듯하지만, 모든 요소가 계산 아래 배치된 거죠.
이런 지저분한(?) 스타일이 매력적인 건 클린 걸의 반듯한 이미지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는 데 있습니다. 매끈한 피부, 반듯한 헤어, 깔끔한 룩이 주는 완벽주의 압박에서 벗어나, 결점과 헝클어짐을 개성으로 치환하는 겁니다. SNS에서 광란의 밤을 보낸 듯한 찰리 XCX의 파티룩과 셀피도 이 같은 맥락에서 시그니처 무드가 됐죠.
브랜드들의 반응도 빨랐습니다. '브랫' 수록곡이기도 한 '본 더치(Von Dutch)' 같은 2000년대 레트로 브랜드는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재조명됐는데요. 본 더치는 2000년대 초반 저스틴 팀버레이크, 브리트니 스피어스, 패리스 힐튼 등 해외 셀럽들이 자주 착용하면서 Y2K 감성으로 많은 인기를 얻은 바 있습니다. 찰리 XCX의 수록곡을 계기로 다시 한번 조명받으며 검색량이 폭등, WSG브랜드에 인수돼 새 출발을 알렸습니다.
각종 패션 브랜드들의 컬렉션과 캠페인에서도 이 무드가 포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우미우는 2025 봄/여름(S/S) 컬렉션에서 수영복과 이브닝 드레스, 수트를 뒤섞은 언밸런스한 조합을 선보였는데요. 의도적으로 구겨지고, 오래 입은 듯한 마감 처리로 시대의 복잡성을 컬렉션에 반영했죠. 가방 속 소지품들이 흘러넘치는 연출도 기획한 바 있습니다.
셀럽들의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서도 이 트렌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 주드 로의 딸인 모델 아이리스 로인데요. 이밖에도 1990년대 코트니 러브부터 에이미 와인하우스, 케이트 모스, 드라마 '스킨즈' 주인공 에피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카야 스코델라리오, 빌리 아일리시 등이 언급되죠.
SNS에서는 자신이 클린 걸에 속하는지 메시 걸에 속하는지 알리는 짧은 영상을 게시하는 밈이 유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메시 걸이 이제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도 자리 잡았다고 분석합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클린 걸 미학에서 벗어나, 불완전함과 무질서, 감정적 취약함을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거죠.
이 변화의 배경에는 사회적 영향도 있습니다. 문화 리서치 스튜디오 '토마토 베이비' 설립자 앤지 멜츠너는 뉴스위크에 "젊은 세대는 SNS와 인플루언서 문화 속 '과도하게 다듬어진 완벽함'의 압박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판단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쾌락과 해방감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문화적 평준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거부하는 방법은 개성을 드러내고, 우리가 독특하고 인간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죠.
하지만 모두가 이 무드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자유로움을 표방하지만 기획된 혼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대표적인데요. '결점을 드러내자'는 메시지조차 패션·뷰티 산업을 거치면 세련된 상품으로 포장돼 팔리는, 이른바 '불완전함의 상업화'라는 역설이 깔려 있다는 거죠.
그런데도 메시 걸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흐름 속에서 각자 방식으로 해석되고 확장될 여지는 충분한데요. 찰리 XCX의 내한이 또 어떤 트렌드를 만들고 공고히 할지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