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한 경기 침체로 서민 고통이 커지는 상황에서 역대급 이자수익을 올린 은행권이 사회환원 요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그러나 상생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으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은 금융회사의 경영 자율성과 건전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개연성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교육세율 인상안은 파급 효과가 크다. 정부는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수익 1조 원 초과 금융사에 부과하는 교육세율을 상향 조정했다. 이러한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은행·보험사 등 대형 금융사 60곳에서 연간 1조3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금융사들은 정치권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횡재세’의 다른 이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습적인 교육세율 상향 발표는 대출금리나 보험료 인상 등 금융소비자에게 부담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준비가 부족한 금융회사의 선택지는 좁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상생금융이 결국 금융소비자 주머니를 겨냥하는 구조로 흐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세금의 사용처 구조다. 교육세는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 전입금을 제외한 금액의 절반을 각각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와 교육교부금(시·도교육청 재정 기반)에 배분한다. 내년에 불어날 세수 상당액도 교육교부금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교육교부금은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늘어나도록 설계됐다. 올해만 해도 2조2000억 원이 교육교부금에 추가 배분될 예정이다. 반면 학령인구(6~21세)는 매년 줄어들어 올해 처음 700만 명 선이 무너졌다. 학생 수는 줄고 돈은 쌓이니 전국 시·도교육청이 다 쓰지 못한 이월금·불용액이 해마다 치솟는다. 연간 5조~8조 원에 달한다. 감사원 감사에서 교육교부금 방만 운용 사례가 속출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남아도는 재원 문제를 외면한 채 금융사에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조세원칙을 허무는 일일 뿐 아니라 고름은 그대로 둔 채 붕대만 감는 꼴이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한다.
교육세를 금융교육 강화와 직접 연계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성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5.7점으로 2년 전보다 하락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금융이해력이 턱없이 낮다. 디지털 금융이해력 점수(2022년 기준)는 43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5점)에 못 미친다. 모바일뱅킹, 간편결제, 비대면 대출 등 금융 환경이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격차는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고령층·유아·청소년, 저소득층의 디지털 금융 소외가 심화하고 신종 사기 피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교육세 재원의 일정 비율을 금융교육 부문에 배정하도록 법제화가 필요하다. 미국·영국 등 주요국처럼 학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금융사가 내는 교육세의 상당 부분을 금융교육 프로그램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을 고려해 볼 만하다.
상생의 본질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혜택을 누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걷힌 세금이 목적에 맞게 쓰이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금융교육 성과로 돌아올 때 상생이라는 이름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교육세가 금융교육의 마중물이 된다면 정부와 금융권,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해법으로 기록될 수 있다.











